April. 2025

kyung sung NEWS LETTER

봉화 고택 여행_가을, 마음이 마냥 물들다

가을이 왔다. 곧 이 땅의 산과 들이 노란색과 붉은색으로 출렁일 것이다. 가을을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경북 봉화 여행을 권한다. 닭실마을을 걷고 청량산에도 올라가면 이처럼 예쁘고 느긋한 가을이 있었나 싶을 것이다.

글|사진. 최갑수 여행작가

 

영남 4대 길지로 손꼽히는 마을

봉화 여행의 첫 코스는 닭실마을이다. 이곳은 충재 권벌의 종택이 있는 안동 권씨 집성촌이다. 봉화읍에서 2km 남짓 떨어진 이 마을은 풍산 류씨가 사는 안동 하회마을, 의성 김씨가 사는 안동 내 앞마을, 월성 손 씨와 여강 이 씨가 함께 사는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영남 4대 길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닭실마을 사람들은 안동에 퇴계 이황이 있고, 영주에 삼봉 정도전이 있다면 봉화에는 충재 권벌이 있다고 말한다. 우직하고 충직한 사림으로 기억되는 충재 권벌. 그는 중종 때의 문신으로 조선 중종 2년 문과에 급제한 후 예문관검열, 홍문관수찬, 부교치, 사간원 정언 등을 역임했고 예조참판까지 올랐던 사람이다. 옳다고 생각한 것을 말함에 거침이 없었던 그는 관직에 있는 동안 두 번의 사화를 겪었고 두 번 모두 파직당했다.

금닭이 알을 품는 모습과 같은 닭실마을 전경

 

거북이 모양의 바위 위에 지은 청암정의 모습

 

영남 제일의 정자, 청암정

충재는 조광조와 김정국 등 기호사림파와 함께 개혁 정치에 참여했는데, 을사사화 당시에는 파직을 당하면서까지 윤임 등을 적극 구언하는 계사를 올렸던 강직한 신하였다. 충재가 닭실마을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519년 아버님의 병환을 핑계로 삼척부사로 부임하면서다. 당시 삼척으로 가려면 봉화를 지나서 가야 했는데 충재는 부임지인 삼척으로 가면서 길지인 닭실마을과 만나게 됐다. 이후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삼척부사에서 파면되자 닭실마을로 와 500년 종가의 터를 잡았다. 충재는 거처할 집을 짓고 난 후 그 곁에 독서를 위해 한서당과 거북이 모양의 바위 위에 청암정이라는 누정을 지었다. 영남 유림의 본거지인 안동과 영주와 맞닿은 봉화에도 정자가 많은데, 이 가운데 청암정은 형식미와 구조미가 가장 빼어난 정자로 손꼽힌다.

청암정 앞 주차장에서는 흙 담장과 나무 때문에 정자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쪽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별세계가 펼쳐진다. 아담한 연못이 있고 그 연못에는 붉은 단풍나무 한 그루가 눈부시게 드리워져 있다. 버드나무와 향나무도 어울려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수백 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고목 한 그루는 세월을 증언하는 듯 허리를 비틀고 연못에 두꺼운 몸통을 걸치고 있다. 연못 너머 커다란 바위 위에는 방금 날개를 쳐든 모양의 팔작지붕 정자인 청암정이 올라가 있다. 굴곡진 바위를 평평하게 다듬지 않고 기둥 길이를 조정해서 지었기 때문에 보는 위치에 따라 건물 높이가 다르게 보인다고 한다.

대여섯 걸음이면 훌쩍 건너는 돌다리를 넘어, 바위를 쪼아서 낸 계단을 오르면 바로 청암정이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대청마루, 마루방이 어울린 ‘丁’(정) 자 모양의 평면을 하고 있다. 대청마루는 50여 명이 올라갈 만큼 넓다. 청암정 내부에는 남명 조식과 미수 허목 등이 쓴 편액이 남아 있어 그 역사를 가늠하게 한다. 허목은 청암정을 참으로 보고 싶어 했지만 결국 보지 못한 채 죽기 사흘 전에야 현판을 썼다고 한다. 청암정 위에서 바라보면 무연히 서 있는 ‘충재’도 눈에 들어온다. 옛날 서당으로 쓰던 건물이다. 낡은 툇마루와 기둥, 청암정을 향해 열어젖힌 들창, 소박하고 담담하게 걸린 ‘충재’ 현판들은 보는 이의 마음을 은근하게 가라앉혀준다.

유유자적 가을 산책, 닭실마을

청암정에서 나와 닭실마을로 향한다. 닭실마을은 야트막한 산이 병풍처럼 마을 뒤편을 두르고 있으며 앞으로는 개천이 휘감아 돌면서 너른 들판을 펼쳐놓고 있는 마을이다. 들판 쪽에서 마을을 바라보면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金鷄抱卵)’의 형국이라고 해서 일찍이 ‘닭실’이란 이름을 얻었다. 일제가 봉화의 춘양목을 수탈하기 위해 철길을 놓을 때, 그들은 곧은길 대신 마을 앞을 휘돌아나가는 길을 택했다. 지네의 형상을 한 철길로 닭실마을의 정기를 꺾기 위해서였다.

닭실마을이지만 현지인들은 ‘달실’이라 더 많이 부른다. 사실 최근에 만들어진 홍보 자료에는 ‘닭실’마을이라고 적혀있지만 수년 전까지만 해도 ‘달실’마을이라고 불렸었다. 경상도 방언에서는 ‘닭 모양의 마을’을 달실이라고 부른다.

마을은 느긋한 걸음으로 돌아보기 좋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걷는 마음은 한없이 여유롭기만 하다. 멀리 보이는 모양새까지 제대로 갖춘 기와집들은 고향집에 온양 푸근하기만 하다. 높지도 낮지도 않게 구불거리며 흘러가는 흙 돌담길, 담 밖으로 기웃이 고개를 내민 감나무 가지 등등 모든 풍경이 어여쁘고 넉넉하다.

기품있는 가을이 담긴, 만산고택

봉화에는 가을의 운치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한옥도 있다. 춘양면 의양리에 자리한 만산고택이다. 조선 후기의 문신인 만산(晩山) 강용(姜鎔·1846~1934년) 선생이 고종 15년(1878년)에 지었다. 대한제국의 통정대부 중추원 의관을 역임한 만산은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내려와 국운의 회복을 기원하며 지냈던 사람이다.

문수산과 낙동강의 첫 번째 지류인 운곡천을 배산임수 삼아 들어선 만산고택은 전형적인 사대부 집안의 가옥구조를 보여준다. 방문객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건 11칸의 긴 행랑채 중앙에 우뚝 솟은 솟을대문이다. 솟을대문은 정3품 당상관 이상의 벼슬을 해야 가질 수 있다. 다시 말해 임금님이 계시는 근정전에 올라가서 정사를 논할 수 있는 반열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11칸이나 되는 행랑채는 만산고택의 부를 상징한다.

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이 펼쳐진다. 마치 조선 시대로 시간여행을 온 듯하다. 마당 건너편에 ‘ㅁ’자형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이어져 있고 왼편엔 공부방인 2칸짜리 소박한 서실이 있다. 사랑채 처마밑엔 각각 ‘晩山(만산)’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만산’은 대원군이 직접 쓴 글씨인데 지금은 서울의 한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현재 걸려 있는 건 탁본이다. 만산은 대원군과 친분이 돈독했다고 한다.

사랑채에는 이것 말고도 현판이 3개가 더 있다. 만산 현판 왼쪽으로 ‘靖窩(정와)’, ‘存養齋(존양재)’, ‘此君軒(차군헌)’이 나란히 있다. ‘정와’는 당시 뛰어난 서예가 강벽원 선생이 썼다. ‘조용하고 온화한 집’이라는 뜻이다. ‘존양’은 ‘본심을 잃지 않도록 착한 마음을 기른다’란 의미, ‘차군헌’은 조선 후기 서예가인 권동수의 글로 ‘차군’은 대나무를 예스럽게 부르는 말이다. 사랑채 옆에 자리한 서실은 후손들의 공부방 용도로 지었다. 네 곳의 추녀마루가 동마루에 몰려 마치 네면 모두가 지붕을 이루는 ‘우진각 지붕’이 특이하다. 지붕 밑에는 어김없이 ‘翰墨淸緣(한묵청연)’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고아한 학문을 닦는 곳’이라는 뜻인데, 영친왕이 8세 때 쓴 글씨라고 하니 놀랍다.

만산고택의 정갈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댓돌 풍경

 

가을의 운치가 가득한 만산고택의 마당

 

청량산에서 만나는 만추

봉화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청량산이다. 봉화에서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산이다. 해발 870m밖에 되지 않지만 그 모양새는 8,000m를 능가한다. 바위 봉우리와 기암절벽이 어우러져 절경을 빚어낸다. 퇴계 이황 선생이 중국의 무이산에 비유하여 ‘조선의 무이산’이라 칭하며 주자학의 성지로 칭송하던 명산이다.

청량산은 한창 가을이다. 나무들이 노랗게 붉게 물들고 있다. 육육봉 아래 자리한 청량사까지만 가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청량사에서는 중심전각은 유리보전을 유심히 볼 것. 안에는 약사여래상이 모셔져 있다. 아픈 사람을 치유한다는 부처다. 국내에 하나뿐인 종이를 녹여 만든 지불(紙佛)이다. 금박을 입혀 겉모습만으로는 종이 부처인지 눈치채지 못한다. 유리보전 현판은 고려 공민왕의 친필이다.

절 오른쪽으로 난 오솔길을 걸어가면 ‘어풍대’에 닿는데, 이곳에서 청량산의 육육봉(12 봉우리)을 한눈에 조감할 수 있다. 어풍대에서면 ‘산은 연꽃이고, 절터는 꽃술’이라는 사실을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어풍대에서 청량산을 바라본다. 울긋불긋한 단풍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 봉화에 와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가을을 만난 듯하다.

알록달록 단풍이 물든 청량산의 가을

 

청량산 아래 자리한 청량사의 모습

 

봉화 여행 팁

1. 봉화 읍내의 솔봉이(054-673-1090)는 송이버섯 돌솥한정식으로 유명하다. 가을산에서 채취한 송이를 급속냉동으로 보관해서 송이 향이 살아있다. 송이버섯을 먼저 먹은 후 돌솥밥은 산나물에 비벼 먹는다.

2. 매호유원지와 봉화읍 중간에 위치한 봉성은 돼지숯불구이로 유명한 마을이다. 소나무로 피운 숯불에 굵은 소금으로 간을 해 구워내는 돼지고기는 기름이 빠져 쫄깃쫄깃하고 담백한 맛을 자랑한다. 솔잎 위에 고기를 얹었을 뿐인데 솔향이 제법 진하게 밴다. 청봉숯불구이(054-672-1116)를 비롯해 8개 음식점이 옛날 장터에서 성업 중이다.

 

[출처 사학연금웹진 사학연금지 10월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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