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October

kyung sung NEWS LETTER

만주, 최전선에 남은 흔적

만주, 최전선에 남은 흔적

근현대부터 중국 만주, 즉 서·북간도는 우리 독립운동의 외교, 투쟁, 생활을 아우르는 공간이 된다. 우리 민족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공간이 바로 이곳이다. 여기에는 애잔한 그들의 일상과 나라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독립투사들의 피와 땀이 서려 있다. 그곳에는 어떤 흔적들이 남아 있을까. 기억 속에서 흐릿해진 역사의 현장은 현재 어떤 모습일까.

글|사진. 김동우 다큐멘터리 사진가


논밭이 된 신흥무관학교 터

1910년 한일병합조약 이후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압록강과 두만강 건너 서·북간도에 자리를 잡는다. 서간도 유하현 삼원보에 이주한 대표 인물은 독립운동가 이회영 집안과 이상룡, 이동녕 등이었다. 그렇게 서간도에 모인 이들은 1911년 4월 삼원보 대고산에서 자치기관이자 독립운동 단체 경학사를 설립하고 부설기관으로 신흥강습소를 둔다. 그러나 삼원보는 교통이 번잡하고 인적, 물적 이동이 많았다. 이에 1913년 통화현 합니하로 학교를 이전하게 되는 데 이 학교가 신흥중학교다. 그러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고 국내에서 활동이 힘들어진 많은 애국지사가 국경을 넘어 서·북간도로 이주한다. 그렇게 1919년 유하현 고산자 부근 대두자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신흥무관학교가 설립된다. 이 학교 출신들은 봉오동·청산리 전투로 이어지는 독립전쟁의 주역으로 성장한다. 안타까운건 신흥무관학교 관련 터가 모두 논밭으로 변해버렸단 사실이다.

일제의 탄압을 피해 고향을 떠난 민초들도 만주 벌판 곳곳에 터전을 잡는다. 그들은 어려운 생활 중에도 독립자금을 댔고 독립운동가에게 안식처와 피난처를 제공했다. 이 과정에서 한인 마을이 하나둘 만들어지는데 용정 인근에 들어선 명동촌이 대표적이다. 이 마을은 1910~1920년대 한인 문화교육운동 중심지로 성장하며 윤동주, 송몽규, 문익환, 나운규 등을 배출한다.

중국 용정, 명동촌 윤동주 생가 터

 

북간도에 남은 가슴 뭉클한 현장

이렇듯 용정은 북간도에서 가장 컸던 우리 동포 마을이자 독립운동 기지였다. 1919년 3월 13일 이곳까지 3·1운동 열기가 차올랐다. 이날 연길, 용정을 중심으로 3만여 명이 모인 대규모 만세운동이 펼쳐졌는데 일제는 만주 군벌 장작림을 압박해 시위를 진압하게 했다. 이 일로 13명이 희생되고 30여 명이 다치게 된다. 순국자 장례식은 3월 17일 국민장으로 거행됐고, 유해는 5,000여 명의 동포들이 참석한 가운데 용정 남쪽 허청리 양지바른 언덕에 안장됐다. 현지에선 이곳을 ‘3·13 반일의사릉’이라 부른다.

또 북간도 왕청현 나자구에 가면 일명 태극기 동굴로 불리는 가슴 뭉클한 장소를 만나게 된다. 첩첩산중 동굴을 어렵게 찾아가면 동굴벽에 태극기가 그려져 있고 ‘대한독립군, 이준, 양희, 지승호, 장태호’란 글씨를 확인할 수 있다. 이 동굴은 1950년대 말 북한의 항일사적조사단이 최초 발견했으나, 사회주의 계열 사적이 아니란 이유로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동굴에 새겨진 태극기와 글귀는 나자구사관학교 학생들이 새겼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하얼빈의 또 다른 영웅

기차에 올라타 북쪽을 향해 한참을 가다 보면 안중근 의사가 원수의 심장을 향해 총탄을 발사한 하얼빈 역에 닿는다. 어찌 이 장소를 그냥 지나칠 수 있단 말인가. 한국인에게 이 도시는 안중근의 도시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하얼빈에는 우리가 잘 기억하지 못하는 독립운동가의 흔적도 남아 있다. 바로 남자현 지사인데 영화 <암살>에서 전지현이 분했던 안옥윤의 실존 인물이기도 하다. 그녀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다. 1932년 가을 국제연맹조사단이 일제의 침략을 조사하기 위해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남 지사는 왼손 무명지 두 마디를 자른다. 그리고 피가 철철 흐르는 손가락으로 ‘조선독립원(朝鮮獨立願)’ 이라고 쓴다. 그녀는 잘린 손가락을 수습해 혈서와 함께 봉하고 이를 조사단에 보낸다. 사내보다 더 사내다웠던 한 여성독립운동가의 모습은 나라와 민족 그리고 독립이 우리 조상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곱씹게 한다. 이듬해 남 지사는 하얼빈에서 일본 경찰에게 붙잡히게 되고 결국 모진 고문 끝에 숨을 거둔다. 대관람차가 돌아가는 하얼빈 문화공원은 그녀의 무덤이 있던 곳이다. 그녀가 어디에서 쉬고 있는지 이젠 찾을 길이 없다.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무수히 많은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 압록강과 두만강 건너다. 만주, 서·북간도, 이곳의 다른 표2 현은 최전선이다.

 

[ 출처 : 사학연금 3월호 바로가기 ]

댓글

웹진

뉴스레터

서울특별시청 경기연구원 세종학당재단 서울대학교 한국콘텐츠진흥원 도로교통공단 한전KPS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한국벤처투자 방위사업청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 한국중부발전 국민체육진흥공단 한국방송작가협회 한국지역난방공사 국방기술진흥연구소 한국수력원자력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지방공기업평가원 한국과학기술한림원

Designed by 경성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