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풍경을 느리게 여행하는 법 : 제주 여행
- 여행
- 2021. 9. 23.
가을 풍경을 느리게 여행하는 법
제주 여행
바다가 보이지 않는 제주 중산간에 위치한 송당리에 가면 드넓은 초원지대에 오름 바다가 펼쳐진다. 오름에 올라 드넓은 제주의 풍경을 감상하고, 가을의 삼나무 숲길을 걷고, 아기자기한 마을 골목길을 산책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글|사진. 김혜영 여행작가
스누피의 명언 “일단 오늘 오후는 쉬자”
2019년 송당리 아부오름 턱밑에 자연 체험형 수목원 ‘스누피가든’이 개장했다. 수목원에 세계적인 캐릭터 스누피를 접목한 국내 최초 수목원이다. 스누피는 미국 만화가 찰스 M.슐츠(1922~2000)가 그린 네 컷 만화 ‘피너츠’에 등장하는 비글인데, ‘피너츠’의 주인공인 찰리브라운보다 유명하다. 여행과 탐험, 자연을 즐기는 스누피와 함께 떠나는 제주 숲 여행이 기대 이상이다.
스누피가든은 실내 전시관과 야외 가든으로 구성돼 있다. 가든하우스의 나선형 계단을 오르며 ‘피너츠’의 역사와 등장인물들을 만나본다. 제주의 아름다운 사계와 스누피의 우주여행을 영상으로 감상하고, ‘피너츠’의 에피소드를 재현한 포토존을 만날 수 있다. 스누피가 자신의 빨간 지붕에 누워 “어제로부터 배우고, 오늘을 즐기고, 내일을 생각하고, 일단 오늘 오후는 쉬자고” 말한 것처럼 고단한 일상이 이어질 때는 잠시 쉬어도 괜찮다.
제주의 자연을 최대한 보존한 스누피가든의 야외 가든에는 오름을 연상케 하는 언덕, 억새밭, 비자나무 숲, 편백나무 숲, 삼나무 숲, ‘피너츠’ 등장인물과 관련된 11개의 테마 정원이 있다. 언덕 넘어 작은 연못과 폭포를 지나면 오두막과 출렁다리로 연결된 우든 어드벤처가 기다린다. 화산송이가 깔린 산책로를 거닐며 초원, 연못, 곶자왈 곳곳에 숨어 있는 스누피와 친구들을 찾아 나서는 길이 흥미진진하다. 5m 높이의 데크에 올라 평소 볼 수 없는 녹나무와 참식나무의 꼭대기를 눈높이에서 관찰하고 열매를 만져본다. 탁 트인 전망을 보고 싶다면 가든하우스 루프탑에 올라 올록볼록 솟아 있는 오름들을 원 없이 감상할 수 있다.
28개의 오름을 품은 제주 송당리
송당리는 한라산 정상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중산간 마을이다. 아부오름, 안돌오름, 밧돌오름, 백약이오름, 다랑쉬오름 등 28개 오름을 품고 있어 ‘오름 왕국’이라 불린다. 그만큼 자연생태계가 잘 보존된 지역이다.
스누피가든과 이웃한 아부오름은 노약자도 오르기 쉽다. 완만한 산책로를 10분 정도만 올라가면 정상에 도착한다. 나지막한 오름이어도 전망은 높은 산 못지않다. 오름 꼭대기에는 거대한 솥단지 모양의 원형 분화구가 움푹 패 있다. 분화구 중앙에 둥글게 심겨 있는 삼나무 군락이 아부오름의 심장처럼 보인다. 분화구 둘레를 천천히 걸으면 30분 정도 걸린다.
아부오름에서 멀지 않은 안돌오름은 거슨세미오름, 밧돌오름을 연계한 트레킹 코스로 인기 있다. 오름 트레킹에 관심이 있다면 도전해볼 만하다. 안돌오름 정상에 올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한라산을 바라보고 앉아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최근에는 안돌오름 아래 ‘비밀의 숲’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편백나무가 만든 멋진 자연 풍광은 동화속 풍경과 같아서 웨딩 사진과 스냅 사진 촬영지로 주목받는다.
송당리 오름 중에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난 곳은 다랑쉬오름이다. 송당리와 세화리에 걸쳐 있으며 멀리서 보면 원뿔처럼 생겼다. 위엄 있고 우아한 모습에 ‘오름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다랑쉬오름의 분화구는 깔때기 모양이며 둘레 1,500m, 깊이 115m로 매우 크고 깊다. 한라산 백록담과 엇비슷한 정도라고 하면 상상이 될까.
다랑쉬오름 정상에서 아끈다랑쉬오름과 성산일출봉, 용눈이오름, 높은오름, 돛오름, 둔지오름 등이 훤히 보인다. 이곳에서 보는 일출 또한 장관이다. 해뜨기 전부터 가파른 오름을 오르는 게 쉽진 않으나, 아침 햇살을 받으며 오름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찰나의 순간이 가슴 벅찰 정도로 감동적이다.
본향당마을과 송당리 골목 산책의 묘미
제주도에는 마을마다 수호신을 모신 신당이 있다. 이 신당을 본향당(本鄕堂), 수호신을 당신(堂神)이라 부른다. 송당본향당의 당신인 백주또는 제주모든 당신의 어머니로 통한다. 제주 신화에 백주또가 낳은 자식 46명이 자손을 퍼트려 제주 368개 마을의 당신이 되었다고 전해온다. 육지에서는 보기 드문 진기한 마을 풍경이 남아 있다. 육지에서 먼 섬이기에 제주만의 독특한 설화와 풍습이 잘 보존되어 있다.
본향당 아랫마을은 송당리에서 가장 번화한 동네다. 번화하다고 표현했지만, 시골 작은 읍내보다도 시골스러운 분위기다. 그래도 카페, 책방, 식당, 소품 숍, 게스트하우스 등 여행자에게 필요한 편의시설이 부족하지 않다. 송당리 가게들은 대부분 제주 돌집이나 시골집, 창고의 내부만 고쳐 사용한다. 마을 분위기가 잘 유지되는 비결이다. 작은 가게들이 길가에 늘어선 모습이 그림에 담고 싶을 만큼 사랑스럽다. 길고양이처럼 어슬렁어슬렁 골목 을 산책하는 즐거움을 누린다. 작은 책방에 들러 책을 읽고, 예쁜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오름에도 오르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사흘이 훌쩍 지나간다.
제주도에 여행 왔다가, 송당리가 좋아 ‘서실리’ 책방을 차려버린 주인장에게 제주살이 이야기를 듣는 시간도 소중하다. 서실리(書實里)는 ‘책 열매 가 익어가는 마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인문 서적을 파는 북카페 ‘제주살롱’에서는 볕이 잘 드는 창문가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는 모습을 보기만해도 마음이 여유로워진다.
송당리는 카페 많은 동네로 소문났다. 송당리를 알리는데 큰 공을 세운 풍림다방은 ‘풍림브레붸’가 유명하다. 이밖에 알프스의 산장 같은 ‘친봉산장’, 제주 돌집 감성을 담은 ‘우연히, 그곳’ 등 개성 강한 카페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송당리에 머물며 가을의 여유를 느껴보고, 휴식과 같은 여행을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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