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가족이 되어버린 장터, 충북 보은시장
- 여행
- 2021. 10. 1.
어느덧 가족이 되어버린 장터
충북 보은시장
속리산 자락에 위치한 충청북도 보은에서는 보은전통시장과 결초보은시장이 365일 고객을 맞이하고 있다. 5일장날이면 아주머니들이 속리산에서 캐온 나물과 버섯들을 바구니에 담아 파는 가족 같은 장터, 보은시장을 둘러본다.
글 : 염세권 / 사진 : 박찬혁 / 영상 : 성동해
조선시대 5개의 시장이 하나로 보은시장
조선 후기, 보은에는 읍내장을 비롯해 원암장, 관기장, 마로장, 회인장의 5개 시장이 섰다. 이 시장들은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거치면서 현재의 자리에서 상설시장과 정기시장으로 고객을 만나고 있다. 속리산에 접한 보은군은 속리산이 ‘속세에서 멀리 떨어진 산’이라는 의미를 가진 만큼 큰 도시는 아니다. 하지만 조선시대부터 경상도에서 한양을 가기 위해서는 보은을 거쳐야 했기에 교통이 발달한 지역이었고, 2007년 청주상주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청주와 매우 가까워지게 됐다. 조선시대부터 보은의 가장 유명한 특산물은 대추였는데, 병충해 때문에 한동안 재배되지 않다가 2007년 복원하여 현재는 보은을 대표하는 특산물이 되었다.
시장이 만들어준 인연, 보은시장의 가족 같은 분위기
우리가 보은시장에 방문했을 때는 아직 이른 때라 대추를 구경할 수 없었지만, 마침 장날을 맞아 시장을 찾은 많은 상인들과 손님들을 볼 수 있었다. 장날이라 도로가에 자리를 잡은 할머니, 아주머니들은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속리산에서 나물과 버섯 같은 것들을 캐와 바구니에 담아놓고 팔고 있었다. 상인들끼리 유독 친근해 보이는 게 신기해 여쭤보니, 수십년을 시장에서 장사하다보니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고. 자식들 모두 키워 보내고 나면 사는 얘기도 하고 의지할 데라곤 시장에서 만나는 옆자리 상인들뿐이었나 보다. 그래서 손님이 찾는 것이라면 니 물건, 내 물건 따로 없이 봉지에 담아 내어준다. 옆 자리에 앉은 시장상인이 가족이나 진배없다.
오래된 역사만큼 오래된 가게들, 그리고 신선한 채소와 과일들
보은시장은 보은전통시장과 결초보은시장으로 나뉜다. 보은전통시장에는 오래된 가게들이 많은데, 35년째 채소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아주머니는 몇 년 전부터 직접 키운 채소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여기 있는 마늘, 밤, 파, 오이, 고추 같은 거 다 제가 직접 농사 지은 거예유.” 20년 넘게 뻥튀기와 과일을 팔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보은시장의 특징을 물어보자 “사람들이 순하고 참 좋아요”라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보은에서 직접 재배한 과일과 채소, 속리산에서 캐온 산나물과 버섯들은 더 없이 신선하고 맛있어 보였고, 거리에서 베어 문 복숭아의 달콤한 과즙은 입안을 가득 채웠다. 이곳에 들르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바쁘게 일하는 상인들, 열정 가득한 보은전통시장
보은전통시장에는 43년 전통의 반찬가게가 있다. 반찬가게 사장님은 매일 새벽 1시에 일어나 반찬을 만들고 농산물 경매에 나가신다. 인터뷰를 하는 와중에도 손님들이 계속 찾아와 반찬을 사가고 있었다. 반찬을 한 점 맛보고 나와 시장길을 따라 걷는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에 이끌려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보니 방앗간이다. 분주하게 기름을 짜고 고춧가루를 내리는 사람들. 20년 동안 방앗간을 함께 이끌어온 부부였다. 손님들이 “이 집이 가장 잘한다”고 말해줄 때 제일 보람 있다고 말하는 부부의 모습에서 보은전통시장의 풋풋함이 더해진다. 다들 바쁘게 일하는 모습을 보니 어쩐지 열정이 가득한 시장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은혜 갚는 제비, 그리고 장터 공산품을 판매하는 결초보은시장
보은전통시장은 농수산물과 먹거리를 파는 전통시장이라면 결초보은시장은 침구류와 한복, 잡화 등을 판매하는 공산품 시장이다. 그래서 원래 이름이 보은종합시장이었는데, 최근 결초보은시장으로 이름을 바꿨다. 결초보은시장에는 수십 마리의 제비가 매년 둥지를 튼다. 제비는 은혜를 갚는 동물이라는데, 실제 한자의 의미는 다르지만 어쩐지 ‘보은’이라는 지명과 어울리는 것 같다. 결초보은시장은 오래된 가게들이 많은데, 상인회 회장님은 1965년 아버지가 개업한 지업사를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었다. 그밖에도 오래된 점포가 많았는데, 작은 커피숍에서 풍겨오는 향기와 제비들의 지저귀는 소리, 포목점의 재봉틀 소리가 어우러져 장터 나들이가 더욱 즐거워지게 하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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