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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하는 게 습관이라면, SBS <미운 우리 새끼> <신발 벗고 돌싱포맨> 육소영 작가

열심히 하는 게 습관이라면

SBS <미운 우리 새끼> <신발 벗고 돌싱포맨> 육소영 작가

글. 김윤양 편집위원  사진. 김용철  장소협조. 등촌동 위카페아임2030

작가 초기, 시사프로그램 막내작가로 사는 건 전쟁이었다.
밤을 새우는 프리뷰도 힘들었지만 출연을 거부하는 출연자를 섭외해 카메라 앞에 앉히기란 불가능에 도전하는 일이었다. 설득이라 쓰지만 대개 비굴하게 매달렸다. 그 간절함으로 무슨 일이건 못할까 싶었다. 최고의 예능작가를 만났는데 시사프로그램 섭외전쟁을 두고 함께 울분을 토할 줄이야! SBS <미운 우리 새끼>, <신발 벗고 돌싱포맨>을 집필 중인 육소영 작가를 만나 핫한 예능프로그램 제작의 비결을 물었다. 사실 뻔하디 뻔한 질문을 하고 뻔하지 않은 답을 듣고 싶었다. 기대와 달리 그녀의 답은 뻔했는데 그 답이 가슴을 쳤다.


예능프로그램은 무조건 재미있어야죠. <미운 우리 새끼>(이하 미우새) VCR이 세 개 나가요. 100분 중 70~80분이 VCR이에요. VCR이 재미있으면 시청률이 잘 나오고요, VCR이 재미없으면 시청률이 떨어져요. 그러니 촬영하고, 편집하고, 편집된 거 또 보고, 스튜디오 녹화하고 나서 시사하고, 또 시사하고 그래요. 요즘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호흡 하나로, 표정 하나로도 웃길 수 있기 때문에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써요. 거칠게도 찍어보고, 잘 찍어온 걸 거칠게도 편집하고, 노래도 이거 깔았다, 저거 깔았다··· 별짓 다 하죠. 초기에 <미우새> 시청률이 20%까지 나왔어요. 이때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지상파 3사 프로그램 시청률로는 제일 높은 편이에요. <미우새>를 시작한 지 벌써 7년 됐어요. 오래된 프로그램이 사랑받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발버둥을 쳐야 하잖아요. 시청률이 좋으면 다들 당연하다고 생각하니까 그렇지 못할 때는 속이 타들어가요. 잘나가던 프로그램도 하루아침에 망가질 수 있거든요. 꾸준한 사랑을 받는다는 건 끊임없이 새로워야 한다는 말인데 매번 출연자를 바꿀 수도 없고 정말 어려워요. 같은 출연자라도 매번 새롭게 찍고 싶죠. 그런데 문제는 이들의 동선이 되게 평범해요. 저만해도 방송국-촬영장-술, 방송국-촬영장-술, 무한 반복이거든요. 하하. 김종국 씨는 스케줄-운동-집 무한반복이고요, 희철 씨는 스케줄-술-집, 이상민 씨는 스케줄-스케줄-스케줄-집 무한 반복이세요. 게다가 이분들이 저희 프로그램만 나오는 게 아니라 다른 프로그램에도 출연하잖아요. 그러니 이들에게서 매번 새로운 걸 끄집어내는 게 어렵죠.

 

SBS <미운 우리 새끼> 300회 기념사진

 

예상대로 고충이 터져 나온다. 프로그램을 띄우기도 쉽지 않지만 유지하기란 더 고통스러운 법. 게다가 핫한 스타들에게 뒤따르는 사고와 구설수는 곧 프로그램의 위기기도 했다. 다 찍어서 편집을 마친 상태로 통편집할 때는 억장이 무너졌다. 육소영 작가 말마따나 방법은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 진짜 죽기 살기로 열심히 하는 것’뿐.

 

제 별명이 ‘시사지옥 염라여왕’이에요. 매 VCR마다 PD와 작가가 있는데 그들 입장에서는 찍고 편집해온 걸 최대한 덜 지적받고 무사히 시사를 끝내는 게 목표죠. 한번은 PD와 작가가 둘이서 ‘누가 더 힘들까’ 대화를 하더라고요. 시사하다가 편집이 마음에 안 들면 제가 머리를 쥐어뜯는대요. 그리고 묻는대요. ‘관전 포인트가 뭐야?’ ‘줄기가 없잖아’ ‘재미 포인트가 뭐야?’ 몇 마디 하지도 않는데 그 말을 들으면 미칠 것 같대요. 편집하다 수정사항이 생기면 제가 이면지에 그 내용을 적는데 그걸 ‘성경책 쓴다’고 해요. 그게 최악이래요. PD들 사이에 ‘육소영 시사 때 살아남는 방법’ 족보도 있대요. 다른 팀 시사가 오래 걸리면 ‘그 팀 힘들겠다’ ‘너희 팀은 얼마 만에 끝났어?’ 이런 대화를 하는 걸 들으면서 반성도 많이 해요. 내가 너무 심했나. (그럼 어떻게 하면 빨리 끝나요?) 그들이 잘하면!

 

독하긴 한 것 같다. 남진, 주현미, 김연자 같은 최고의 스타들을 모시고 베트남으로 버스킹을 떠났던 <트롯신이 떴다> 때는 베트남 현지에서 두 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단다. 얼마 전 <미우새> 답사차 영덕에 갔다가 이틀 동안 무려 43km를 걸어 그중 촬영할 코스를 정하고 왔단다. 한라산을 촬영할 때는 기필코 정상까지 답사를 하고 내려오고, 카메라 감독이 힘들어할 때는 카메라를 대신 들어주기도 했단다. 팀 내 최고령 스태프라는데 말이다! 정신도, 체력도 독하다! 그런데 그녀의 삶이 가장 독했던 시기는 정작 작가 초기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막내작가로 살던 시절이었다. 전두환 독재정권 시절 불교탄압에 대해 방송했던 ‘법난’ 편과 ‘청송감호소’ 편을 제작할 때였다.

 

당시 담당 PD님이 1983년도 어디 군대에 있었던 사람 이름 석 자를 줬어요. “좀 찾아봐.” 예전에는 전화번호부가 있었잖아요. 그 이름 석 자 들고 전화번호부를 펴요. 전국에 그 이름이 천명이면 일일이 다 전화를 하는 거예요. 찾다 찾다 못 찾으면 관련 부대에 신원조회를 부탁했어요. 그런데 몇 달 새 개인정보보호법이 강화되어 이제는 불가능한 방법이죠. 그때도 막 해주진 않았거든요. 간곡하게 부탁해서 겨우 찾아내면 PD님이 다른 이름을 주세요. ‘누구 찾아내!’ 한번은 전두환 독재정권 때 교도관으로 일했던 사람을 찾았어요. 번호를 찾는 것도 일이지만 인터뷰 섭외는 더 힘들었어요. 당연히 안 해주죠. 그 사람에게 매일 전화해서 인터뷰해달라고 하죠. 논리로 설명이 안 된다, 그럼 빌어요. 비굴하게 빌고 끊고 다음 날 또 전화해. 또 빌고. 녹취를 하는 걸 아니까 그 사람도 말을 아끼잖아요. 제가 녹취한 걸 들었는데 더 이상 비굴할 수가 없어! 빌고, 빌고, 또 빌고. 죽어도 안 해줄 것 같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오래 빌면 꿈쩍 안 할 것 같은 사람이 인터뷰를 해줘요! PD가 인터뷰를 하러 갔는데 그 사람이 물었대요. “육소영이라는 작가는 왜 안 왔냐. 진짜 궁금하다”고. 간절하게 매달리면 그게 통하니까 그게 또 놀랍죠. 기억나는 사람 또 있어요. 법난에 대해 많이 아는 분이라 해서 명진스님을 찾고 있었는데 이분은 적이 없는 거예요. 조계종에 전화해요. 그랬더니 휴대폰도 없고 아무것도 없대요. 어느 절에 많이 나타난대. 그럼 그 절에 전화해서 물어요. 없대요. 1년 안 왔다고. 무슨 절에 있다는 소문이 있대요. 그럼 또 그 절에, 저 절에… 절마다 전화해서 ‘명진스님 계세요?’ 어떤 절은 ‘가셨는데~’ 이럼 또 애가 타. ‘혹시 오시면 꼭 연락 좀 주세요’ 이렇게 세상에 모든 절에 다 전화했는데 한 달 만에 어느 절에서 ‘여기 스님이 오셨어요!’ 하는 거예요. 당시 MBC 10층 사무실이 뻥 뚫려 있었는데 제가 스님과 통화하고 너무 기뻐서 사무실에 뛰어가 사무실이 떠내려갈 듯 소리를 쳤어요. “명진스님 찾았어요~~~~~”

 

 

이보다 더 치열할 수 없는 1년을 보내고 ‘나는 교양프로그램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웃기고 재미있는 걸 좋아하는 성향상 ‘너는 예능이다’라는 동료 PD, 작가들의 말을 따른 것이다. 그런데 예능국에 가서 연예프로그램을 해보니 ‘예능도 아니다’ 싶었다. 그럼에도 예능에 주저앉은 건 팔 할이 당시 ‘간곡히 붙잡았’던 PD, 작가들 때문이었다.

 

인생 뭐 있나, 이렇게 잡는데 그냥 예능 하자, 하고 주저앉았죠. 그리고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을 많이 했어요. 예능을 가보니 제가 또래보다 조금 늦었더라고요. 늦었으니 열심히 해야죠. 교양에서 배운 대로 열심히 하는 건 자신 있었거든요. 당시 <X맨> 할 때였는데 SBS 자료실에 있는 자료를 다 봤어요. 정말 세상의 모든 예능프로그램을 다 본 것 같아요. 일본 예능은 일본 사는 사람처럼 봤고요, 보다 보다 이스라엘 예능도 봤어요. 어느 채널에서 새 예능 론칭한다 하면 최소 1, 2회는 다 봤어요. 그냥 보기만 한 게 아니라 노트에 기록을 했어요. 어떤 프로그램인지, 어떤 코너가 있는지, 보고 난 소감에 시청률까지 일기처럼 썼어요. 당장 쓸데없는 일 같아도 회의를 하다 보니 모니터한 게 엄청나게 도움이 됐어요. 어떤 기획이 재미있는지 없는지, 그 사람 캐릭터는 어떤지, 또 어떻게 살릴지 저도 모르게 판단이 서는 거죠. 예능감은 타고나야 하는 부분이 있지만 모니터를 많이 하고 많이 보는 건 정말 큰 재산이에요. 제가 후배들에게 많이 보라고, 모니터 많이 하라고 매번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죠.

 

보고 보고 또 보니 답이 그 안에 있었다. 프로그램을 성공케 하는 수많은 장치와 캐릭터 구축, 현재 트렌드와의 접점, 비틀어봤을 때 비로소 새롭게 생기는 관점들을 프로그램 모니터를 통해 깨치고 익혔다. 작가 초기, 밤을 새우며 프리뷰하던 시절의 치열함으로 덤비니 못할 일이 없었다. 동기들보다 조금 늦게 예능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유튜브에서 스타라도 공중파에 나와서 웃기는 건 한계가 있을 수 있어요. 그럼 그 친구의 캐릭터를 어떻게 살릴 것이냐. 제가 그 친구 영상을 많이 보고 우리 프로그램에 나와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게 해줘야 하잖아요. 그러려면 정말 수많은 영상을 봐야 해요. 얼마나 보냐고요? 밥 먹고 집에 가면 잘 때까지 계속 보는 것 같아요. 물론 그러다 보니 영화를 보더라도 즐겁게 보지 않고 ‘저걸 어떻게 써먹지?’, ‘앵글 좋네. 다음에 저렇게 찍자고 해야지’, 좋은 풍경을 보면 ‘다음에 여기 와서 찍어야지’ 이런 생각으로 가득 차요. 그러니 사는 게 피곤해요. 핫한 기획에 대해 대학에서 특강을 한 적 있어요. 그때 제가 한 말은 ‘먹힐까 안 먹힐까’ 그것만 생각하라는 거였어요. 처음부터 새로운 걸 하기 쉽지 않으니 ‘재미있는 걸 더 재미있게 하려고 생각해보라’고요. 그때 어떤 학생이 가져온 게 ‘성폭행 당한 친구의 인생 상담을 해주자’는 거였는데 물론 그런 프로그램은 없죠. 그런데 그 프로그램이 가능할까요? 없을 때는 왜 없을까도 생각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새로운 생각이 떠올라요. <트롯신이 떴다>는 아침에 눈 떠서 샤워하다가 생각이 났어요. 버스킹이라고 평생에 한 번도 해본 적 없을 최고의 트로트 가수들을 모시고 해외에 가서 버스킹을 해보면 어떨까. 출근해서 이런 프로그램 어떠냐 했더니 “너무 좋아. 그런데 섭외부터 해와” 하길래 섭외를 시작했죠. 최고의 스타들이라 섭외가 정말 까다로웠고 쉽지 않았지만 결국 당대 최고의 스타들이 그 무대에 서서 뜨거운 감동을 얻었죠. <신발 벗고 돌싱포맨>은 <미우새>를 찍다가 촬영본을 모니터하는데 문득 ‘결핍이 많은 네 사람이 토크쇼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부족함이 있는 사람들이 삐딱하게 보는 시선이 재밌잖아요. 이 모든 게 모니터의 힘이죠.

 

돌싱포맨 포스터

인터뷰를 끊고 물었다. 일주일 중 주말은 쉬냐고. 이렇게 24시간 레이더를 켜고 살면 대체 언제 쉬냐고. 답은 예상대로였다.

 

너무 재수 없게 들릴 수 있는 말인데, ‘쉰다’는 느낌은 없는 것 같아요. 집에 있으면 계속 TV를 켜놔요. 술을 좋아하는데 친구들, 후배들과 술 마실 때 빼고는 쉬지 않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제가 한 프로그램을 보고 웃고 즐거워하는 게 좋고요. 처음에는 출연한 사람들이 잘 됐을 때 희열이 느껴졌어요. ‘나 천재인가 봐.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이런 생각이 들 때, 천직이 맞는 것 같은데 스트레스가 너무 많으니까 그럴 땐 도망가고 싶죠. 만약 지금 하는 모든 프로그램을 다 관두라고, 작가 일을 그만하라고 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아요. 늘 최선을 다했으니까. 이런 말 하면 욕먹으려나. 열심히 하는 게 습관이 됐어요. 무엇을 위해 성공시킬 거야, 이게 아니라 열심히 하는 게 제 버릇이에요. 어떨 때는 ‘난 진짜 대충할 거야. 시청률이 뭐가 중요해. 상관없어’ 그러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알아요. 한 번도 열심히 안 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스스로 워낙 무뚝뚝한 선배라는 육소영 작가. 함께하는 후배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프로그램들이 있을 수 있었다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솔직히··· 찡했다. 나는 ‘열심히 사는 게 버릇’이라 할 만큼 살았나, 되묻게 되었다.
딸의 결혼을 바라는 어머님께는 비혼을 선언한 딸이 여전히 ‘미운 우리 새끼’지만, 열심히 일한 끝에 살 집도 마련했다. 무엇보다 쇼핑을 할 때 가격표를 보지 않고 살 만큼은 되는 것 같다는 말, 멋졌다. 꿈꾸는 인생 2막은 술도 팔고 책도 파는 서점주인이라는 육소영 작가. 인터뷰 말미에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물었다. 당연히 ‘보고 또 보라’고 말할 줄 알았는데 그것만은 아니었다.

 

요즘 후배들은 되게 짧게 일해요. 6개월에서 길어야 1년. 프로그램을 많이 해봐야 한대요. 이력서에 쓸 프로그램 한 줄을 늘리는 거죠.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누구 보여주려고?’ 쉽게 말해 그 이력서를 보고 작가를 뽑는 게 저잖아요. 저는 같은 연차에 프로그램 많이 한 작가를 선호하지 않아요. 그 작가가 이전 프로그램에서 일을 잘 배웠는지, 일을 잘할지, 그런 게 중요하잖아요. 한 프로그램에서 3, 4개월 일했다면 뭘 얼마나 배웠겠어요. 최소 1년은 해야 현장도 알고 토크도 알고 어떤 아이템이 먹히는지도 감이 생기는 거지. 이제 시작하는 작가들이 백날 기획해봐야 실현 가능성이 낮아요.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니까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제작하고 책임감을 갖고 꾸려나가는 그 모든 걸 좀 차근차근 배웠으면 좋겠어요. 물론 우리가 대기업에 다니는 회사원이 아니고 프리랜서라 그만두는 것도 다시 시작하는 것도 쉽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런데 예능은 7, 8년 차가 되면 갈림길에 서요. 잘하는 작가인가, 아닌가. 주변에서 판단해요. 잘하는 작가이려면 좀 더 치열하게, 꾸준하게 내 안에 많이 쌓아야 해요. 제가 해봤잖아요. 남들보다 조금 빨리 시작하고, 조금 늦게 시작하는 건 전혀 문제 되지 않아요.

 

 

그렇다. 비단 작가 일만 그럴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다. 타고난 감이 있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배우며 내 안에 내공을 쌓고, 최선을 다하는데 안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는데 마음이 뜨거워졌다. 핫한 프로그램 장수비결은 진부하지만 죽도록 열심히 하는 것뿐이라는 그 간절함이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육소영 작가가 술 파는 서점을 열면 기꺼이 다시 가서 술 한잔해야겠다. 아마도 십 년 내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 같지만.

 

 

[출처 : 한국방송작가협회 방송작가 9월호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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