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보는 그녀 26년의 노력을 꽃피우다 : 배우 박은빈
- 사람
- 2022. 10. 17.
믿고 보는 그녀 26년의 노력을 꽃피우다
배우 박은빈
연예계에서는 ‘믿보배’라는 단어가 몇 년 동안 유행했다. ‘믿고 보는 배우’ 연기를 업으로 삼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찬사다. 믿고 본다는 의미는 긴 시간 동안 좋은 연기로 보는 이들에게 신뢰를 전했다는 뜻이다. 2022년 10월, 지금 이 순간 대중에게 전목적인 신뢰를 받고 있는 배우는 누구일까? 배우 박은빈이라는 사실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여러 번의 고사, 결국 찾아온 ‘우영우’
2022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우리 사회에 묵직한 시사점을 남긴 드라마가 있다. ENA 채널에서 방송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다. 이 작품에서 박은빈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대형 로펌의 변호사 우영우를 연기해 호평을 받았다. 인지도가 높지 않은 채널에서 1%가 되지 않던 시청률로 시작한 이 작품은 탄탄한 작품성과 박은빈의 호연이 시너지를 내며 17.5%라는 높은 시청률로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쉬운 마음으로 접근하면 안 될 것 같은 작품이었어요. 좋은 작품이라는 느낌은 왔지만 배우로서 ‘해낼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암담해지는 게 사실이었죠. 작품을 제안받고 대본을 읽으면 제 나름대로 영상화를 해보는 편이에요. 그런데도 이 드라마는 대본은 좋지만 제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어요. 어떤 목소리와 톤으로 연기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어요.”
촬영이 시작된 지난해 말보다 1년 먼저 작품을 제안받았던 박은빈은 여러 번 정중하게 고사했다. 마침 KBS2 <연모>라는 사극이 왔다. 여성임에도 조선의 왕이 돼야 했던 왕세자에 대한 이야기였기에 연기자로서 보여줄 것이 많겠다는 판단에 작품을 선택했다. 그렇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의 인연이 멀어졌다고 생각했으나 뜻밖에 일이 벌어졌다. 제작진이 박은빈의 일정을 모두 기다린 것. 배우로서 당연히 부담이었다. 하지만 진심으로 설득한 유인식 감독과 문지원 작가의 모습에 출연을 결정했다.
“<연모>를 촬영하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준비하기까지 사실상 2주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어요.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되겠다는 절박함이 있었죠. 참고할 만한 캐릭터가 많았지만 굳이 모방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단지, 작가님과 자문 교수님이 자폐 스펙트럼의 특징을 알려주셔서 캐릭터를 만들어갔습니다. 딱 보기에도 이상해야 했지만 그렇다고 변호사로서 신뢰를 잃지 않아야 했어요.”
별나지만 아름다운 우영우가 전하는 메시지
자신의 세상에 머물러있던 ‘이상한 변호사’가 진짜 세상으로 한 발짝 나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박은빈의 탄탄한 연기력과 법정물로서 매회 사회적 이슈를 담은 스토리 덕분에 회를 거듭할수록 시청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비롯해 교육문제, 환경문제, 장애인문제 등 여러 사회문제에 대해 의문을 던지며 생각해볼 점을 환기하는 역할도 했다.
“저는 마지막회의 제 대사를 좋아해요. 배우로서는 부담스러웠던 장면이었지만, 인사청문회 전 엄마인 태수미(진경)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습니다. 흰고래 무리에 사는 외뿔고래 이야기를 하면서 “이게 제 삶이니까요”라고 인정하는 모습이 있어요. 자신의 삶은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있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자체가, 자폐인을 넘어 세상 모든 외뿔고래들과 함께하고 싶은 메시지였어요.”
실제로 그의 연기를 보고 그동안 세상과 문을 닫았던 많은 사람들이 소통에 나섰다. 그의 SNS에는 장애를 갖고 있거나 장애가 있는 가족을 둔 사람들의 글이 이어졌다. 박은빈은 이 모든 반응이 감사하다.
“그 분들이 해주시는 감동적인 말씀들이 힘이 되기도 했어요. 이 드라마를 본 분들이라면 반향어(상대의 말을 똑같이 따라하는 말)를 듣고 적어도 이상하다고 놀라거나 피하진 않으시겠지 생각했어요. 우영우도 마냥 도움이 필요한 존재라기보다 도움 없이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친구라고 시청자들이 생각하시게 만들고 싶었어요.”
“마지막회의 제 대사를 좋아해요.
흰고래 무리에 사는 외뿔고래 이야기를 하면서 “이게 제 삶이니까요”라 인정하는 모습이 있어요.
자신의 삶은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있고 아름답다는 메시지를 함께 나누고 싶어요.”
26년 연기생활, 단단한 배우가 되다
박은빈은 1990년대 중반 데뷔한 아역배우 중 현재까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배우 중 하나다. 1996년 아동복 모델로 데뷔했으며, 1998년 SBS 드라마 <백야 3.98>에서 최소영 역을 맡아 아역배우로 연기에 발을 디뎠다. 이후 2000년대까지 여러 주인공의 아역으로 천천히 자신의 연기를 다져갔다.
박은빈이 처음 주연을 맡았던 작품은 2012년 TV조선에서 방송된 <프로포즈 대작전>이다. 이후 MBC <구암 허준>의 이다희, SBS <비밀의 문>의 혜경궁 홍씨 역을 맡았던 박은빈은 어린 시절 연기했던 사극에서의 이미지 덕분에 사극이 어울리는 배우로 이름을 알렸다.
2016년은 그의 연기생활에서 또 한 번의 전환점이 이뤄졌다. jtbc <청춘시대>에서 거침없고 사랑에 적극적인 송지원 역을 맡아 그동안 선보인 캐릭터들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그 분위기를 이어 2019년 SBS <스토브리그>에서 야구단 최초의 여성 운영팀장 이세영을 맡으며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펼쳤다. 덩치 큰 야구선수들 사이에서 전혀 주눅 들지 않는 모습은 박은빈의 새로운 면을 엿보게 했다.
“언제부턴가 작품을 끝낼 때마다 좋았던 분들과 다시 작품을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나곤 했어요. 저는 지금까지 제가 나온 모든 드라마를 다 똑같이 사랑하고 있어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도 마치면서 눈물이 났는데 이전과 소감이 달랐어요. 코로나19 시대에 촬영이 무사히 끝났다는 다행스러움과 배우로서 어렵지만 해내야 하는 장면들을 끝냈다는 안도감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내일이 기대되는 이유
많은 아역배우가 안방극장에서 빛났다 사라져갔다. 어떤 이들은 아역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싶어 지나치게 무리를 하는 바람에 이미지가 소모되기도 하고, 성인 역할이라는 새로운 장벽을 넘지 못해 대중에게 잊혀지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의 색을 찾으며 연기력을 다지는데 26년의 시간을 쓴 박은빈은 이제 어딜 가도 존재감 빛나는 배우로 성장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이러한 그의 미래에 날개가 되어준 선택이었다. 드라마 종영 후 쏟아지는 관심과 인기로 들뜰 법도 한데 그는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차분하게 각오를 다지고 있다.
“촬영을 마치고 이어지는 일들이 끝나고 나면 오랜만에 휴식 시간을 갖고 싶어요. 여행도 가고 차기작도 검토하고 싶죠. 아직 정해지진 않았지만 어떤 모습을 보일까 고민하는 하반기를 보낼 것 같아요.”
연기생활에 대해 잘 이야기하던 박은빈의 눈시울이 단 한 번 붉어진 순간이 있었다. 바로 가족을 이야기할 때다. 많은 아역배우들이 그렇듯 어머니는 그의 가장 든든하고 가까운 매니저였다. 박은빈 역시 네다섯 살 연기를 시작할 때부터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어머니와 함께 촬영현장을 누볐다. “이번 작품이 큰 사랑을 받았지만 어머니는 마냥 기뻐하지 않으셨는데, 아마 제가 어떤 부분이 힘들었을지 아니까 안타까워하셨던 것 같다”며 눈물을 닦았다.
배우는 흔히 배역이라는 재료를 담는 그릇으로 비유된다. 박은빈은 그릇으로 치면 건강하고 맑아 재료의 맛을 더욱 잘 살리는 그릇이다. 26년의 시간 동안 단단한 내면을 다지며 연기에만 몰입해온 박은빈이 다음 작품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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