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Nov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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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의 시간을 사로잡은 콘텐츠

[출처 : 한국프로스포츠 협회 매거진 - 프로스뷰 VOL.12]

시성비 트렌드는 콘텐츠 소비에도 변화를 일으켰다. 16부작 미니시리즈를 10분짜리 요약본으로 보고, 2시간짜리 영화를 2배속으로 본다. 대중음악의 길이는 점점 짧아지고, 멀티태스킹을 가능하게 하는 오디오북 서비스가 인기다. 대세가 된 숏폼 시장은 향후 더 크게 성장할 전망이다. 그렇다면 기본 1~3시간 이상 소요되는 프로스포츠의 콘텐츠는 시성비 시대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글. 강신규
영상문화연구자,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연구위원.
저서로는 <아이피, 모든 이야기의 시작>, <서브컬처 비평>, <서드 라이프: 기술혁명 시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한국 문화현실의 지형들> 등이 있다.

 

시성비 시대,
콘텐츠의 변화

시성비 시대가 도래하면서 콘텐츠 소비 패턴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똑똑하고 효율적인 시간 소비의 추구가 콘텐츠 소비로도 확산되는 것이다.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서 콘텐츠의 핵심만 몰입도 높게 소비하려는 경향이 시성비 콘텐츠 소비의 대표적인 특징이라 하겠다.

콘텐츠 소비의 변화는 콘텐츠의 변화와 연결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중음악의 길이 단축이다. 뉴진스의 많은 노래들이 3분을 넘지 않는다. (여자)아이들의 신곡 ‘Wife’는 길이가 2분밖에 되지 않는다. 도입부가 짧아지거나 생략되는 경우도 많다. 정기구독형 서비스를 통해 음악을 무제한으로 골라 듣는 시대 이용자들은 첫 소절이 나오기까지의 시간을 잘 기다려주지 않는다. 한 곡을 깊이 음미하기보다는 여러 곡을 빠르게 ‘찍먹’하기를 원하기도 한다.

책을 읽어주는 오디오북 서비스도 인기다. 오디오북은 귀로 들으면서 눈과 손은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소위 멀티태스킹을 가능하게 한다. 국내 오디오북 시장은 2023년 300억 원에서 2024년 1,080억 원 규모로 팽창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기존 출판산업이 오디오북 시장으로 진입 혹은 전환하는 추세다. 인공지능(AI) 같은 기술의 접목과 함께 ‘AI 음성 서비스’, ‘마이 AI 보이스’ 등 새로운 서비스로의 진화 혹은 확장 역시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유튜브를 위시해 긴 콘텐츠를 압축해 보여주는 요약 콘텐츠는 이미 꽤 오래전부터 많이 이용돼 왔다. 2시간짜리 영화나 16부작 드라마를 주요 장면 위주로 20~30분 내에 정리해주는 식이다. 특히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는 요약본을 먼저 접하고, 관심이 생기면 콘텐츠 원본을 찾아보는 이용 패턴도 유행이다.

출처: 인크로스 / 와이즈앱·리테일·굿즈

 

더 오래 보고,
더 커지는 숏폼 콘텐츠

다른 무엇보다 시성비 콘텐츠를 대표하는 것은 숏폼(short-form) 콘텐츠다. 틱톡이 주도한 숏폼 콘텐츠의 붐에, 유튜브 쇼츠와 인스타그램 릴스가 가세했다. 국내 플랫폼도 적극적으로 숏폼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네이버는 2023년 8월 숏폼 서비스 ‘클립’을 출시하고 공식 숏폼 창작자인 클립 크리에이터를 선발해 창작 활동을 지원 중이다. 아프리카TV는 숏폼 서비스 ‘캐치’에 콘텐츠를 하나로 모아보는 기능인 ‘캐치 스토리’를 출시했다. 아프리카TV에서 진행한 BJ의 라이브 스트리밍을 기준으로 이용자가 생성한 캐치를 하나로 모아 스토리화하는 식이다. 이용자가 생성한 캐치 중 방송의 흐름을 알 수 있는 구간이나 의미 있는 부분을 AI가 자동으로 선별해 캐치 스토리로 생성한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숏폼 콘텐츠를 오래 이용하고 있다. 디지털 광고기업 인크로스가 2023년 9월 15~69세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숏폼 콘텐츠 이용률은 89.5%에 달했다. 이는 2022년보다 8.4%p 증가한 수치다. 40~60대 중장년 10명 중 8명꼴로 숏폼을 이용한다는 결과도 특기할 만하다. 또,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가 2023년 9월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8월 기준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안드로이드+iOS)의 숏폼 플랫폼 1인당 월평균 이용 시간은 46시간 29분으로, OTT(9시간 14분) 대비 5배 이상 많았다.

숏폼 콘텐츠는 재생시간이 짧으면서도 몰입도가 높아 바쁜 일상에서 잠깐잠깐 만족스럽게 즐기기에 적합하다. 다양한 광고·마케팅 활동, 이벤트 등과 접목하기 쉽다는 특징도 있다. 디지털 미디어랩인 나스미디어는 2023년 980억 달러(약 126조 원) 규모인 글로벌 숏폼 광고시장이 2025년 1,440억 달러 규모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K리그 틱톡 모먼트 수상자 틱톡 캡처 화면 &copy;TikTok

 

시성비 콘텐츠,
왜 성장했을까

시성비 콘텐츠의 성장에 자리한 요인은 크게 다음과 같다.

첫째, 기술의 진보다. 이제 정보통신기술(ICT)은 언제 어디서나, 그리고 누구나 쉽고 빠르게 콘텐츠를 즐기고 제작할 수 있게 만든다. 고용량의 콘텐츠를 다량으로 접하는 것이 가능하고, 다양한 용도에 맞춘 툴이 개발돼 있어 많은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데도 무리가 없다.

둘째, 기술 발전은 인간을 편리하게 해줌과 동시에 바쁘게 만든다. 같은 시간 동안 기술을 활용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고, 그 기술을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잘 활용하느냐가 경쟁사회 속 비교우위를 점하는 데 있어 중요한 기준이 된다. 기술에 탑재돼 우리에게 제공되는 정보도 너무 많아졌다. 범람하는 정보 속에서 핵심 정보만을 얻으려 하는 것은, 대중의 당연한 선택이다.

셋째, 미래에 대한 젊은 세대의 불안감 반영이다. 젊은 세대가 시성비 콘텐츠에 몰리는 것은, 저성장 시대 취업도 쉽지 않고 사회의 미래가 밝지만은 않은 상황에서, 시간이라는 자원을 유용하게 씀으로써 남들보다 빨리 성장하고 안정을 얻고 싶다는 의식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한국농구연맹·한국여자농구연맹 틱톡 캡처 화면 ©@kbl_official, @wkbl_official

 

 

시성비 시대의
프로스포츠 콘텐츠

아무리 열성 스포츠 팬이라고 해도 관심 있는 모든 경기를 관람 혹은 시청하기는 어렵다. 2~3시간씩 소요되는 스포츠 경기를 풀로 관람·시청하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런 팬들에게 시성비 콘텐츠는 좋은 선택지가 된다. 요약 콘텐츠를 통해 주요 장면을 압축해서 보거나,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숏폼 콘텐츠로 만들어 다른 팬 또는 친구들과 공유하면서 즐거움을 배가시킬 수 있다.

국내 프로스포츠 업계에서도 팬들과 소통하고 팬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숏폼 콘텐츠를 활용하는 일이 늘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K LEAGUE)은 틱톡과 2018년 마케팅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꾸준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다가 지난 2023년 2월 계약을 연장했다. 둘은 K리그 각 구단 틱톡 계정 신설과 운영 활성화를 도모하고, 틱톡 내 인기 영상을 선정해 구단과 팬들에게 시상하는 ‘이달의 틱톡 모먼트’상을 신설했으며, 구단 현장 이벤트 지원 및 협조 등 다양한 협업을 진행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의 경우는 2023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기간 동안 틱톡을 활용해 국가대표 응원 이벤트를 진행했다. 이외에도 한국농구연맹(KBL), 한국여자농구연맹(WKBL)과 대한축구협회(KFA)도 틱톡 채널을 운영하며 팬들과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스포츠 팬의 저변을 젊은 연령층으로까지 넓히는 계기가 됨과 동시에, 새로운 콘텐츠 형식을 통한 스포츠 소비 기회를 만든다.

한편, 시카고 블랙호크스(NHL), 애리조나 카디널스(NFL)과 같은 미국 프로스포츠팀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활발한 마케팅을 펼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인스타그램은 숏폼 마케팅에 최적화된 플랫폼 중 하나로, 사진이나 동영상을 강조하는 본래 기능에 숏폼에 특성화된 릴스 기능을 추가해 프로스포츠팀과 팬들을 연결하고 있다. 이 팀들은 릴스를 통해 디지털 동영상 혹은 팬들이 만든 영상(UGC)을 공유한다. 시카고 블랙호크스의 경우 선수가 팬이나 가족과 소통하는 영상을 공유하거나 파트너 브랜드를 홍보하는 방법을 활용한다면, 애리조나 카디널스는 경기 하이라이트나 팀이 승리하는 순간을 짧은 클립 영상으로 제작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렇듯 같은 플랫폼을 활용한다 해도 다른 콘셉트를 통해 팬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

미국 델라웨어 노스(Delaware North)의 리포트에 따르면 2030년엔 스포츠 실황 중계권보다 숏폼 비디오 가치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시성비 콘텐츠 구매비용이 기존 전통적 방식의 콘텐츠 권리비용이나 구매비용보다 커질 날이 머지않은 셈이다.

시성비 트렌드는 콘텐츠를 효율적으로 소비하는 것을 넘어, 결국 짧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는 사람들의 생각으로 확장된다. 이에 따라 소비자들로 하여금 시간을 조각조각 나눠 관리하게끔 하는 산업의 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도 이미 2023년부터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시성비와 비슷한 의미인 ‘타이파(タイパ, ‘타임 퍼포먼스’의 줄임말)’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다. 대학생들에게 강의가 비는 1~2시간을 활용해 짧게 일하는 것을 중개하는 ‘다이미(タイミ)’ 서비스도 인기를 얻는 중이라 한다. 프로스포츠 업계 역시 팬들의 일상을 빈틈없이 메우게끔 하는 광고·마케팅과 사업 다각화 전략에 대해 깊게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시카고 블랙호크스·애리조나 카디널스 인스타그램 릴스 캡처 화면 ©@nhlblackhawks, @azcardinals / ©Delaware North

 

[출처 : 한국프로스포츠 협회 매거진 - 프로스뷰 VOL.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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