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맨해튼에서 찾은 우리 독립운동사
- 컬럼
- 2021. 6. 8.
뉴욕 맨해튼에서 찾은 우리 독립운동사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인근에 대한민국 독립운동 사적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1917년 뉴욕에서 개최된 식민지 민족을 대변하는 소약속국동맹회부터 1919년 3·1운동으로 이어지는 독립에 대한 열망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글|사진. 김동우 다큐멘터리 사진가
2·8독립선언부터 3·1운동까지
현재 고급 주상복합 건물로 쓰이고 있는 뉴욕의 구 맥알핀 호텔은 뉴욕 독립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대표적인 장소다. 이 건물은 1912년 건립 당시 1,200여 개 객실을 갖춘 세계 최대 규모 호텔이었는데 1917년 10월 29일 식민지 민족의 입장을 대변하는 ‘소약속국동맹회(The League of Small and Subject Nationalities)’ 개최 장소이기도 했다. 이 회의는 1차 대전 후 개최될 평화회의와 각종 국제회의에서 약소민족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일차 목적이 있었다. 한인 참석자는 박용만 등 하와이 대한인국민회 대표들이었다. 이듬해 12월 14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제2차 소약속국동맹회에는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등에서 대표를 파견했다. 당시 회의에선 ‘일본의 조선 합병은 위법’이란 결의문이 채택됐다.
이때 이런 내용이 미국 연합통신사(Associated Press)를 통해 세계 각지로 보도되는데 일본 고베에서 영국인이 발행하는 재팬 애드버타이저(The Japan Advertizer)에도 관련 소식이 실린다. 이 기사를 접한 일본 내 한인 유학생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이때부터 2·8독립선언 논의가 급물살을 타며 물밑에서 은밀히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뉴욕의 맥알핀 호텔에서 북쪽으로 걷다 보면 얼마 못 가 ‘타운 홀(Town Hall)’이 나온다. 1921년 1월 12일 문을 연 이 극장도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적지다. 당시 뉴욕에 있던 한인들은 이곳에서 ‘미국위원회(The American Committee)’ 후원을 받아 1921년 3월 2일 3·1운동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한인과 미국인은 이날 행사에서 손을 맞잡고 만세 삼창하며 잃어버린 나라의 독립을 염원했다. 놀랍게도 1,0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행사장을 가득 메웠는데 당시 뉴욕에 머물고 있던 한인의 수는 고작 100여 명 안팎이었다. 나머지 참석자는 모두 미국인이었다. 적은 수의 우리 조상들이 먼 타향에서 조국 독립을 알리는 데 얼마나 열성적이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드라마 <미스터션샤인>의 실제 주인공 황기환
뉴욕 교외에서도 우리 독립운동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뉴욕 퀸스의 한 공동묘지에 가면 독립운동가 황기환(?~1923)의 묘지가 남아 있다. 드라마 <미스터션샤인>에서 이병헌이 연기한 ‘유진 초이’의 실제 인물이 바로 황기환이다. 그는 10대 후반이던 1904년 미국 이민 길에 올라 1917년 제1차 세계대전에 미군으로 지원해 입대한다. 동양인으로 1차 대전 전장을 누비던 황기환은 1918년 11월 전쟁이 끝나자 김규식의 권유로 프랑스 파리에 남게 된다. 김규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무총장 자격으로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했던 인물이다. 여기서 황기환은 임시정부 파리위원부 서기장으로 활동한다. 그러던 중 1919년 러시아 북극해의 부동항 무르만스크 철도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홍재하 등 한인 수십명이 영국군을 따라 에든버러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파리위원부는 황기환을 영국에 급파한다. 그는 백방으로 뛰며 영국인들을 설득해 일제 치하의 땅으로 송환될 뻔한 한인 30여 명을 프랑스로 데리고 나오는 데 성공한다. 당시 영국은 영·일 동맹을 맺고 있어 이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려 했다. 또 황기환은 영국에 머물며 영국 일간지 <데일리 메일(Daily Mail)>의 종군기자 프레더릭 아서 매켄지 (Frederick A. Mackenzie) 등을 상대로 일제의 잔혹함과 독립운동의 정당성을 역설하는 활동을 펼친다. 그 성과로 매켄지 기자는 자신이 취재한 내용을 담아 1920년 『한국의 독립운동』이란 책을 발표한다.
열정을 다해 독립운동의 당위성을 알리고 한인들을 보살피던 황기환은 뉴욕으로 건너가 1923년 심장마비로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한다. 안타깝게도 뉴욕 퀸스에 있는 그의 묘소는 유족이 없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고국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이밖에도 뉴욕 롱아일랜드 오이스터 베이(Oyster Bay)에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가장 아꼈던 대저택 ‘사가모어 힐(Sagamore Hill)’이 남아 있는데 이곳은 1905년 8월 4일 이승만과 윤병구가 루스벨트 대통령을 만나 독립 청원서 전달을 시도한 장소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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