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탐험이 시작되는 곳서천 장항도시탐험역
- 여행
- 2020. 11. 5.
풀이 무성하게 자라나 철로를 덮었다. 한눈에 봐도 더는 기차가 다니지 않는 곳이다. 폐역이라니, 을씨년스러울 법도 한데 이곳은 뭔가 다르다. 철로를 건너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가득하고, 나들이를 나온 양 이따금 멈춰 서서 철로를 배경으로 인증샷도 찍는다. 오래된 역사가 새롭게 탈바꿈한 ‘장항도시탐험역’으로 함께 떠나보자.
글. 정재림 사진. 고인순, 장항도시탐험역 제공
공간의 혁신을 이루다, 카멜레존
우리나라 최초의 화력발전소인 서울화력발전소가 세계 최초로 발전 시설 지하화를 결정함에 따라 지상에는 시민공원이자 예술공간인 문화창작발전소가 조성되는 공간혁신을 이뤄냈다. 제주 아라리오뮤지엄도 이전 공간의 특성을 간직한 채 다른 용도로 탈바꿈해 공간을 혁신한 사례로, 제주도의 대표적인 카멜레존이다. 카멜레존은 카멜레온(Chameleon)과 공간을 의미하는 존(Zone)을 합성한 말로, 기존 용도에서 벗어나 상황에 맞춰 새롭게 변신한 것을 일컫는다.
알록달록 색을 입은 역사
물자와 문화의 교류지 역할을 해왔던 장항역. 1930년 11월 첫 운행을 시작한 장항선은 장항읍과 서천을 놀랍도록 성장시켰다. 장항항, 장항제련소와 함께 산업시설 생태계를 만드는 데 한몫을 톡톡히 했던 장항역은 당시에 장항 미곡창고와 조선정미소, 곡물검사소 등이 들어서 수많은 노동자로 활기가 가득했던 곳이었다. 하지만 1990년 금강하굿둑이 완공되며 이야기는 달라졌다. 장항선 선로가 개량되자 군산으로 연결되는 신 장항역이 생긴 것. 기존의 장항역은 2008년에 장항화물역으로 개칭되면서 여객 열차 운영이 중단됐고, 그 후 화물취급도 서서히 중지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이렇게 쇠락한 장항역과 장항읍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고자 시작된 2015년 국토교통부의 ‘장항화물역 리모델링 및 공생발전 거점 조성사업’. 한국 근대산업 역사의 산물인 구 장항역에 사람과 공간, 역사와 문화를 연결하는 플랫폼을 구축해 근대도시인 장항읍을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빛바랜 하늘색 간판 대신 노란 ‘장항 도시탐험역’ 간판이 자리를 잡았고, 폐역사를 다시금 밝은 분위기로 끌어올리기 위해 색색의 컬러 필름으로 외벽을 꾸몄다. 알록달록한 색을 덧입은 역사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선로마저 특별한 관광지로 바뀌는 마법을 보여 주었다.
누구나 즐기는 문화예술 플랫폼
장항도시탐험역 건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맞이홀’이 관람객을 맞는다. 옛 대합실 공간인 맞이홀은 평상시에 누구나 와서 자유롭게 쉬고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모빌 형태의 둥근 조명들이 방문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특히 이곳은 품위 있는 클래식 연주를 들을 수 있는 ‘피아노 치는 기차역’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음악, 연극, 무용 등의 다양한 공연도 펼쳐지는 마치 카멜레온 같은 공간이다.
1층 ‘어린이 시-공간’은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다양한 놀이기구가 마련돼 있다. 장항도시탐험역 2층으로 올라가면 또 다른 공간이 관람객을 기다린다. ‘핑크 카페’로 유명한 도시탐험카페는 거대한 유리창으로 한가득 분홍빛이 쏟아져 들어오는데 건물 외관에 시공한 컬러 필름 덕분이다. 내부도 온통 분홍빛으로 꾸며져 SNS용 사진 맛집으로 통한다. 지역 주민에게는 휴식공간으로, 관광객에게는 여행 정보를 제공하는 여행자 라운지로 사용된다. 그뿐만 아니라, 금요일마다 진행되는 ‘금요일에 싹(SAC)’ 프로그램을 통해 스크린으로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진행된 공연을 실제 현장처럼 즐길 수 있다. 발레 공연 상영회를 보고 발레에 대한 열띤 토론이 벌어지는가 하면, 성악 공연 중에 음악을 따라 부르면서 이른바 떼창을 자아내기도 한다. 이렇듯 장항도시탐험역은 지역주민들에게 문화예술에 대한 목마름을 채워주고 있다.
장항에서 뻗어 나가는 관광거점 공간
장항도시탐험역에서 가장 대표적인 곳이자, 서천 시티투어의 한 부분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는 ‘장항이야기뮤지엄’. 전시관으로 꾸며진 이곳은 장항의 오랜 역사와 미래를 소개하는 공간이다. 일제강점기에 갈대밭을 매립해 만들어진 장항의 탄생부터 일본 제국주의의 수탈의 아픈 기억과 근대적 시설을 통한 경제적 풍요에 이르는 성장기, 세월 따라 흐릿해진 침체기,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재도약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까지 엿볼 수 있다. 살아있는 역사의 공간인 셈.
장항이야기뮤지엄 안쪽 계단을 이용하면 장항도시탐험역의 하이라이트가 나온다. 바로 도시탐험 전망대. 18m의 높이의 전망대에서는 옛 장항제련소 굴뚝과 멀리 금강하구의 전경이 내려다보인다. 특히 전망대에서 감상하는 노을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니 노을이 지는 시간에 맞춰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이 밖에도 장항 시내와 송림 하늘길, 금강하굿둑 등 주변 관광지를 손쉽게 구경할 수 있도록 자전거 대여소도 운영하고 있다.
장항도시탐험역은 개관 8개월 만에 3만 명이 방문하는 기록을 세웠다. 또한 ‘2019 지역정책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사업·주민복지 분야 최우수상을, ‘2019 전국 기초단체장 매니페스토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는 도시재생 분야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장항 지역의 자랑인 장항도시탐험역은 장항의 거실 역할을 하며 장항 주민과 관광객이 즐길 수 있는 공연·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서천 관광프로그램과의 협업도 진행하며, 앞으로는 그 역할을 확장해 장항 관광의 시작점이 되기 위해 힘을 쏟을 예정이다. 장항의 집, 기별포영화관, 미곡창고, 장항공공도서관 등 주변의 풍부한 문화예술 플랫폼과 함께 앞으로 장항도시탐험역이 관광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길 기대해보자.
· 장항도시탐험역
주소: 충남 서천군 장항읍 장항로161번길 27
전화: 041-956-2277
평일 11:00~20:00 / 주말 11:00~21:00
인스타그램 : @janghangtravelstation
[출처 중부발전 웹진 중부가족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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