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FEBUARY

kyung sung NEWS LETTER

영화 <다음 소희> 정주리 감독 : 우리 곁에 있는, 그러나 보지 못했던 소희에 관하여

[출처 : 한국방송작가협회 방송작가 웹진 7월호 바로가기]

 

글. 정윤미 편집위원사진. 김용철장소협조. 하월곡동 카페어바웃

<다음 소희>는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간 후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는 고등학생 소희, 그리고 소희의 죽음을 추적하는 경찰 유진의 이야기를 두 축으로 전개되는 영화다. 6년 전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다. 그러나 영화는 실제 사건을 극적으로 각색해 영화화하는 방법을 택하지 않는다. 소희의 죽음을 정직하게 따라가고, 이 죽음이 왜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우리에게 되묻는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면, 관객이 아닌 어른의 한 사람으로 무겁고 아프게 소희의 삶을 되짚어보게 된다. 학생으로도 노동자로도 온전하게 대우받지 못하고 사회 밖으로 점점 밀려나는 아이들. 이들의 세계를 냉정하고도 뜨겁게 그려낸 정주리 감독을 만났다.

 



<다음 소희>는 제가 먼저 기획한 영화는 아니에요. 제작사에서 콜센터 현장실습 문제를 다룬 소설이 있는데, 이 소설을 영화화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거든요. 그래서 소설을 읽어보게 됐는데, 마지막 작가의 말에 이런 내용이 있었어요. 특성화고 학생이 콜센터에서 일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걸 방송을 보고 알게 됐고, 너무 마음이 아파서 이 소설을 쓰게 됐다고요. 그 방송이 <그것이 알고 싶다>였는데, 저도 소설을 읽고 나서 방송을 찾아봤거든요. 정말 너무 충격적이더라고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소설과는 별개로 제가 직접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미스터리적인 요소 없이 주인공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정직하게 따라가고, 이후에 죽음을 다시 되짚어보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해야겠다. 그래서 제작사를 만나서 솔직하게 얘기를 했어요. 처음에 제안해 주셨던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영화와는 결이 많이 달라질 것 같다, 중간에 주인공이 죽고 그 후에 새로운 주인공이 나타나서 1시간을 더 끌고 가는 방식을 생각하고 있다고요. 그랬더니 일단 초고를 봤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시나리오를 써서 드렸는데, 보시고는 좀 난감해하긴 하셨어요. 제가 말은 그렇게 했어도 그래도 대중적인 요소가 좀 있지 않을까 기대를 했는데, 시나리오를 보니 전혀 아니었던 거죠.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상업영화를 생각했다가 제작 방향이 완전히 달라진 건데, 그런데도 해보자고 하셨어요. 그게 너무 감사했어요.

 



영화 <다음 소희>는 특성화고 졸업반 소희가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가면서 겪게 되는 일들과 그 속에서 변해가는 소희의 모습을 담아낸다. 서비스 해지를 요구하는 고객을 어떻게든 막아내야 하는 것이 소희의 업무. 그 과정에서 욕설은 기본, 때로는 성희롱을 경험하기도 한다. 소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풍경들은 마치 실제 콜센터를 그대로 옮겨 놓았다는 착각이 들 만큼 사실적이다.

 



이 얘기는 꼭 하고 싶었는데요. 영화를 본 많은 분들이 제가 콜센터를 직접 취재하고 다녔다고 생각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현장을 취재한 건 전혀 없어요. 특성화고의 현장실습 문제를 꾸준하게 취재해 온 기자분들의 기사, 인터뷰한 책, 토론회 자료들, 방송 프로그램 등만 봐도 이미 너무나 많은 것들이 취재돼 있었어요. 이걸 토대로 콜센터가 이런 모습이구나, 이런 환경이라면 인물들은 이런 감정을 갖게 되겠구나, 하는 걸 충분히 짐작하고 상상할 수가 있었죠. 콜센터 현장실습 학생의 사망 사고는 2017년 초에 있었고 제가 알게 된 건 2020년 말이거든요. 그 사이에 콜센터뿐만 아니라 여러 현장실습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었고 취재도 계속됐어요. 그런데도 저는 이 문제를 알지 못했던 거죠. 취재된 자료가 이렇게 많은데 나는 어쩜 이렇게 몰랐을까. 분명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인데, 저조차도 알지 못한 채로 오랜 시간을 보내온 거죠.


경찰인 유진은 소희의 죽음을 추적하면서 여러 인물을 만난다. 특성화고 교사, 콜센터 팀장, 교육청 장학사··· 이들에게 소희를 부당한 일터로 내몬 책임을 묻고 따지지만, 돌아오는 말은 한결같다. “이게 현실이에요.” 이 어른들의 말을 어느 순간 소희도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변하지 않는 현실이라는 것을.


자료를 보면서 제가 느낀 건 소희와 같은 일들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는 거였어요. 소희의 이야기가 특별한 게 아니라 아주 평범하고 만연한 것이구나. 만약 이게 하나의 개별적인 사건이라면 이것만 파고들고 이런 일이 생긴 확실한 이유도 찾을 수 있을 텐데, 계속 반복되어온 일이다 보니 누구 하나 책임지려는 사람들이 없는 거죠. 특별히 악한 한 사람이 있어서가 아니라 모두가 자기 책임은 아니라고 발을 빼고 있으니까요. 또 각자 입장에서 보면 할 말들이 있는 거고요. 이런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고 싶었어요.


<다음 소희>가 현실에 가까운 리얼함을 전달할 수 있었던 데에는 배우들의 열연이 컸다. 김시은, 배두나 두 배우가 각각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이끌며 소희의 삶과 죽음, 그리고 죽음 이후의 시간들을 완벽하게 표현해냈다.


 

김시은 배우는 조감독님 소개로 만나게 됐어요. 조감독님이 예전에 같이 작업한 적이 있는데 소희 역할에 어울릴 것 같다면서 추천을 했거든요. 주인공 오디션의 첫 스타트라고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만났죠. 만나서 제가 한 첫 번째 질문이 시나리오 어떻게 봤냐였는데, 사실 으레 하는 질문이었거든요. 그런데 김시은 배우 대답이 “소희가 꼭 세상에 나왔으면 좋겠어요” 라는 거예요. 자기가 소희 역을 하고 싶다는 걸 피력하는 게 아니라 온전히 이 영화가 나왔으면 좋겠다고만 하는데, 뭔가 굉장히 비범하게 느껴졌어요. 이 친구가 굉장히 객관적으로 시나리오를 보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러면서 그냥 일상적인 얘기들을 하게 됐는데, 어느 순간에 제가 “다음에 만날 땐 다른 걸 해보자” 이렇게 말을 한 거예요. 그랬더니 이 친구가 “다음에요? 그럼 제가 지금 된 거예요?” 하면서 깜짝 놀라더라고요. 그 자리에 있던 스태프들도 다들 놀라서, 아직 오디션 대기자가 많다고도 얘기하고요. 그런데 제가 아니라고, 김시은 배우로 하겠다고 그랬죠.

 


경찰로 나오는 오유진이라는 캐릭터는 제가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배두나 배우를 염두에 두고 썼었어요. 영화 초반부에는 등장하지 않다가 중반부터 나오는 역할인데, 사실 배우 입장에서도 모험이잖아요. 구성적으로도 위험한 시도였고요. 그런데 막연하게나마 배두나 배우에 대한 믿음이 있었어요. 내가 왜 이렇게 만들고 싶어하는지 알아봐 줄 거라는 기대도 있었고요.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배두나 배우를 만났는데, 역시나 누구보다 정확하게 시나리오를 이해하고 있더라고요. 유진이 등장한 이후로 소희는 죽은 소희로만 나와요. 뒤늦게 나타난 유진은 소희가 사라진 세상에서 소희의 죽음을 추적해 나갑니다. 영화의 절반이라는 긴 시간 동안요. 저는 유진도, 관객들도, 결국 소희가 부재하는 시간을 같이 지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깨닫게 되는 거죠. 이제는 우리 곁에 소희가 없구나.


정주리 감독은 두 편의 장편영화를 연출하고, 두 작품이 모두 칸 영화제에 초청받는 영광을 누렸다. 한 편은 특성화고 학생들의 현장실습 문제를, 또 한 편은 외딴 마을에서 학대받고 방치된 아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한국 사회의 특수한 현실을 드러낸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두 영화가 모두 세계인의 마음을 울렸다.


첫 영화 <도희야>를 만들고 칸 영화제 초청을 받았을 때는 진짜 아무 정신이 없었어요. 해외에 나가본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고, 그저 모든 게 어리둥절했어요. 무엇보다 한국의 외딴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이 작은 이야기를 외국 사람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지 그게 참 신기했어요. <다음 소희>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다음 소희>는 저도 잘 몰랐던 이야기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외국 관객들은 이해조차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칸에서 <다음 소희> 상영이 끝나고 파티를 하는데, 거기서 만난 한 포르투갈 청년이 이러는 거예요. 우리 세대의 이야기를 해 줘서 고맙다고요. 그 이후에도 여러 나라에서 상영을 했는데, 전 세계 청년들이 자기들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입해서 이 영화를 받아들이고 있더라고요. 디테일한 상황은 각자 다를 수 있겠지만 모두가 비슷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구나, 싶었죠.

 

<도희야> 포스터_파인하우스필름(주) 제공 / <다음 소희> 포스터_트윈플러스파트너스(주) 제공

 

사실 <다음 소희>를 만들기까지는 저도 힘든 시간이 있었어요. <도희야>를 끝내고 3년쯤 쓴 시나리오가 있었거든요. 그걸 들고 제작사랑 투자사를 알아보는데 그때 다들 반응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그렇게 다 거절을 당하고, 그 시나리오를 완전히 단념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그렇게 6~7년이 그냥 가더라고요. 나는 이제 나이도 많고, 시간도 너무 지나버렸고, 더 이상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없을 것 같고··· 이런 생각들 때문에 너무 힘들고 사람이 피폐해지더라고요. 그 무렵에 코로나19까지 시작되면서 상황이 더 안 좋았거든요. 이렇게 다음 영화를 포기하게 되는 건가 싶었는데, 그때 제가 소희를 만나게 된 거죠.


<도희야>와 <다음 소희>. 닮은 듯 전혀 다른 두 영화를 통해 가려진 이들의 삶과 그 안의 모순을 날카롭게 그려낸 정주리 감독. 다음은 또 어떤 이야기를 풀어내게 될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어요. 첫 번째 영화 이후 두 번째 영화가 나오기까지 8년이 걸렸는데, 이번엔 적어도 4년 안에 다음 영화를 공개하는 것, 이게 유일한 계획이자 가장 큰 목표예요. 인터뷰를 할 때마다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기한을 못 박아 둬야지 책임감을 갖고 할 테니까요. <도희야>가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다뤘다면, <다음 소희>는 외로움에서 더 나아가 고립에 대한 감정을 다룬 영화거든요. 다음에 제가 또 어떤 감정에 꽂히게 된다면, 아마도 그걸 표현하는 영화를 만들 것 같아요. 어떤 감정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이게 제가 영화를 만드는 이유인 것 같아요.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4년 안에 꼭 다음 영화를 만들겠다 밝힌 정주리 감독. 지금쯤 그의 시선은 어디에, 누구에게 머물고 있을까. 앞선 두 영화가 그랬듯, 세상 밖으로 나와야만 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되길 기대해 본다.


 

[출처 : 한국방송작가협회 방송작가 웹진 7월호 바로가기]

댓글

웹진

뉴스레터

서울특별시청 경기연구원 세종학당재단 서울대학교 한국콘텐츠진흥원 도로교통공단 한전KPS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한국벤처투자 방위사업청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 한국중부발전 국민체육진흥공단 한국방송작가협회 한국지역난방공사 국방기술진흥연구소 한국수력원자력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지방공기업평가원 한국과학기술한림원

Designed by 경성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