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October

kyung sung NEWS LETTER

일곱 권의 필사 노트,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

[출처 : 한국방송작가협회 방송작가 웹진 8월호 바로가기]

 

EBS <다큐 프라임 - 아동인권 6부작 ‘어린人권’>
김미지 작가

글. 신미경 편집위원사진. 김용철장소협조. 카페미뇽 여의도점

 

 

누구에게나 슬럼프는 온다. 슬럼프가 티가 나게 오는 사람도 있고, 스리슬쩍 온 듯 안 온 듯 지나가는 사람도 있을 테다. 김미지 작가는 그 시기의 자신을 쪼그라진 깡통 같다고 표현했다. 다시는 안 펴질 것 같은 쪼그라진 깡통. 하지만 작가는 기어코 그 시기를 이겨냈고, 지난해 <다큐프라임 – 어린人권>으로 정말로 받고 싶었다던 한국방송작가상을 수상했다. 지금의 그녀는 이보다 더 매끈하고 단단할 수는 없을 것만 같다.

 

 
 
 

 

EBS <다큐 프라임>을 통해서 많은 작품을 집필하신 것으로 아는데요, 이번 수상작 ‘어린 인권’은 처음에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지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볼까요?

<다큐 프라임>이 EBS 교육방송 프로그램이잖아요. 처음에 ‘양천구 입양아 학대 사망 사건’이 났을 때,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조사를 좀 하다 보니 2022년이 어린이날 선포 100주년이더라고요. 그래서 아동의 인권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고 의견이 모였죠. 아동 인권에 대해서 준비를 하다 보니까 많은 질문이 생겼어요. 아동 인권은 왜 집 문 앞에서 멈추는가. 사회적으로 모든 폭력이 다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는데, 왜 집 안에서는 사랑한다는 이유로 부모가 아이를 때리거나 고함을 치는가. 그게 이상한 거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집 안에서 벌어지는 학대를 다루기로 했고, 이번만큼은 문제 제기만 하는 게 아니라 완결성을 좀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컸어요. 그래서 프로그램 마지막에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분들로 판사님, 검사님을 출연시킨 부분도 있죠. 그리고 사회적인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이 프로그램을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고, 그러기 위해선 상도 많이 받았으면 좋겠고, 인구에 회자되기를 바랐죠. 그래서 내레이션을 누가 하면 좋겠냐고 주변에 의견을 물었더니 이영애 씨가 하면 많이 볼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동안 아동 관련 활동도 많이 해왔고요. 그래서 일단 이영애 씨 나온 프로그램을 다 챙겨 보고, 원고 쓰는 것만큼이나 열심히 메일을 썼어요. 내레이션을 맡아준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볼 것 같다고요.

©EBS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를 보면 사례자가 굉장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면서 중요하게 느껴지는데요, 사례자 섭외는 어떻게 하셨나요?

실제로 사례자를 찾는데 굉장히 공을 많이 들이는 편인데, 이번에 <어린人권>을 할 때도 아동학대를 사건으로 보고 싶지 않았어요. 가정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훈육과 학대의 그 사이 지점을 짚어내자고 했고, 그런 과정에 있는 엄마를 만난 거죠. 처음엔 훈육 때문에 만났는데, 그날 아이가 저희한테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엄마가 나를 때린다’고···. 요즘에는 제작진이 그런 사실을 알게 되면 신고를 하게 되어 있거든요. 근데 알고 보니 그 아이가 저희 딸이랑 동갑이에요. 함께 갔던 전문가들이 빨리 신고를 해야 한다고 하는데 저는 못 하겠더라고요. 제가 부모나 학교 관련 프로그램들을 많이 하다 보니까, 신고를 하면 부모와 분리된 아이들이 어디에 가게 되는지, 어떻게 생활하게 되는지 그런 걸 너무 잘 알거든요. 근데, 엄마가 스스로 엄청 변하고 싶어 했어요. 그분이 왜 저희 손을 잡았을까··· 지금 생각을 해보면, 주변에 정말 아무도 없었어요. 그래서 제작진이 도움을 드리겠다고 하니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응한 거더라고요.

 


취재 과정에서 힘든 점은 없으셨나요?

처음에 전문가 선생님들이, 이 엄마가 굉장히 애를 먹일 거라고 경고를 했거든요. 저는 아이 엄마가 변화가 될 거라는 자신이 있었어요. 그런데 아이 엄마가 뭘 받아들이는 걸 잘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중간에 3개월 정도 잠적을 하기도 했고요. 그땐 이 가정을 괜히 선택했나 싶기도 했어요. <다큐 프라임>팀 부장님이 오래 함께 일한 분이라, ‘어쩌면 아이가 집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한 채로 방송이 나갈 수도 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죠.
우리 프로그램이 아이에게 도움이 되어야 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긴 한 걸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중간에 또 한 번 학대 상황이 발생해서, 아이가 엄마랑 분리가 돼서 보호기관에 들어갔거든요. 그때 정말 고민이 많았는데, 그때는 어른이 된 아동학대 피해자분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분리를 안 했으면 학대가 더 심해졌을 거라면서 본인들의 경험을 이야기해줬는데, 그게 힘이 되더라고요.

©EBS


피해 아동이 보호기관에 들어가면, 보호가 목적이기 때문에 학교를 안 가거든요. 제 입장에선 아이가 저희 딸이랑 같은 5학년이다 보니까 학교생활이 걱정되더라고요. 결석이 길어지면 학년을 올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니까. 나중에 아이 엄마에게 왜 잠적했냐고 물어보니까, 아이를 데려오면 또 때릴까 봐 겁이 났대요. 그래서 연락을 피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일련의 과정에서 제가 그 엄마를 좀 미워하기도 했어요. 그때는 오히려 미혼인 빈정현 PD가 아이 엄마와 지속적으로 연락하고 그랬어요. 어떤 부분에서는 저보다 훨씬 어른스럽더라고요. 그래서 같이 프로그램하면서 좋았던 기억도 많아요.
다행인 건 아이가 보호기관에 있는 동안 상담을 받고 성장을 했다는 점이에요. 엄마가 아이에게 손을 대면 ‘엄마, 그건 학대야’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거죠. 상담 선생님이 그 말씀을 하셨어요. 엄마가 조금 덜 변하더라도 아이가 굉장히 성장할 거라고요. 어쨌든 아이는 집으로 돌아왔고, 학교도 잘 다니고 있고요. 제작진과는 지금도 연락을 하면서 지내요.



이 프로그램을 만들길 잘했구나 싶었던 순간도 있으셨겠지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프로그램 뒷부분에 나오는데, 방문 간호사가 가정을 직접 방문해서 아기가 24개월이 될 때까지 돌봐주는 제도가 있어요. 서울시에서 먼저 시작을 했는데 정확하게는 ‘서울아기 건강 첫걸음’ 사업이라고 해요. 저희도 그 제도를 알고 굉장히 좋아했거든요. 꼭 우리 프로그램 때문은 아니지만, 프로그램에서 도움받는 사례가 소개된 이후 이 사업이 보건복지부의 중점 사업이 됐고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어요. 이 서비스가 의미가 있는 건, 좋은 부모가 되게 해준다는 점이에요. 그리고 능동적인 복지라는 점도 있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어떤 복지 제도를 만들면, 그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 이용자 스스로가 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구조 때문에 이용을 안 하는 경우가 생겨요. 서비스의 질이 조금 떨어지는 면도 있고요. 그런데 이렇게 능동적인 복지로 소득과 상관없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제도로 만들어지면 서비스 수준이 어느 정도 지켜지거든요. 사실 프로그램에서 시스템 이야기를 많이 하면 시청률이 안 나와요. 그런데 기계적으로 시스템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을 통해 어떤 효과가 있는지 보여줬을 때 반응이 훨씬 크게 오죠. 그리고 우리 프로그램을 통해서 이런 제도가 있다는 걸 많은 사람에게 알린 것도 보람 있고요. 세상이 떠들썩하진 않아도 이런 식으로 조금씩 세상을 넓혀가는 거죠.

©EBS

 

방송이 너무 해피엔딩이 될 것 같아서 넣지 않은 부분이 있어요. 1편에 출연한 아동학대 피해 아동이랑 PD가 마지막으로 통화를 하는데, ‘너는 우리랑 함께한 1년이 어땠니?’라고 물었더니 ‘좋은 작가님, PD님을 만나서 즐거운 소풍을 다녀온 것 같다’고 했대요. 그러면서 ‘엄마를 이렇게 바꿔주셔서 고맙다고’도 하고요. 말을 예쁘게 할 줄 아는 아이였어요.



이제 작가님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여쭤봐도 될까요? 처음에 어떻게 방송작가가 되셨는지 궁금해요.

원래 꿈은 순수문학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고향이 경남 부곡인데, 열여덟 가구밖에 살지 않는 깡촌이거든요. 저희가 형제가 6남매고, 제가 큰 오빠한테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 컸어요. 그땐 오빠한테 좋은 동생이고 싶고 그래서 책도 읽고, 글도 열심히 쓰고 그랬죠. 대학 다닐 땐 운동을 했는데요, 졸업하고 나니까 별로 하고 싶은 게 없는 거예요. 마침 그때 친구가 방송작가가 되고 싶다고, MBC 방송아카데미에 원서 쓰러 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같이 가서 썼어요. 그래서 작가를 하게 됐죠.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저는 절대로 순수문학 작가는 못 됐겠다 싶어요. 근데, 방송 일은 또 굉장히 잘 맞더라고요. 사람 만나는 거나 공부하는 것, 여러 가지로요. 내가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걸 작가를 하면서 알게 된 셈이죠. 저한테 맞는 걸 찾았다 싶은 후로는 별로 흔들리지 않았어요.

 


어린 시절에는 볼 게 TV밖에 없었던 때도 있었잖아요. 그 시절에, 아니면 그 이후라도 굉장히 인상 깊게 봤던 다큐멘터리 작품이 있을까요? 혹은 작가 생활을 하는 데 영향을 받은 선배 작가님이 있으신지요?

<인간극장> 오정요 선배요. ‘추 씨 할머니 백 리 길’, ‘그 산골에 영자가 산다’ 같은 편 등···. 또 김옥영 선생님이 쓰신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같은 프로그램들이요. 제가 휴먼 다큐 작가가 되기에는 삶의 파고도 없었고, 스스로 글발도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선배님들이 쓴 다큐멘터리를 보면 멋진 문장들, 가끔 저로서는 절대 쓸 수 없는 그런 문장들이 나와요. 오정요 선배 글을 읽었을 때는, 물 같았어요. 어떤 굉장히 괜찮은 사람이 나한테 이야기를 해주는 그런 느낌이랄까요. 김옥영 선생님 프로그램에서는 구성하는 법을 참 많이 배웠습니다.



한 번쯤은 슬럼프 같은 걸 겪기도 하잖아요. 작가님도 슬럼프가 있었다면 그 시기를 어떻게 벗어났는지 궁금하네요.

집에 노트가 몇 권 있는데, 거기에 선배들의 원고를 필사한 게 있어요. 휴먼 다큐는 어떤 분 거 필사하고, 또, 논리 다큐는 또 다른 분 거 필사하고 그런 식으로 했던 것 같아요. 그냥 어느 시기에 제가 뭐가 잘 안 되는 느낌이 있었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작가는 너무 하고 싶은데 역량은 안 되는 것 같고, 욕심만 많고 그런 느낌이 있었어요.
서초구 반포동에 국립중앙도서관이 있잖아요. 거기에 가면 그동안 방송한 게 다 있어요. 그래서 주말마다 도서관에 갔어요. 거기서 박명성 선생님의 <인간시대>도 보고 그랬거든요. 보면서 노트북으로 필사를 하는 건 너무 수월하잖아요. 그래서 노트에 손으로 다 썼어요. 근데, 필사를 하고 있으니까 안 불안하더라고요. 제가 집 정리를 몇 년에 한 번씩 할 때마다 필사 노트 정리를 할까 말까 고민하거든요. 이것도 집착인가 싶기도 한데 그건 못 버리겠더라고요. 그게 한 일곱 권 정도 되는데, 필사를 어느 정도 하고 나니까 자신이 좀 생겼어요. ‘내가 이 정도 했으니, 80점은 안 돼도 중간은 가는 작가는 되겠지’라고 계속 되뇌었던 거 같아요.



방송 전에 수십 번을 보고 체크도 하실 텐데, 그럼에도 실제로 방송이 나가는 순간에 오류가 눈에 들어온다든가, ‘아 저기는 왜 저렇게 썼지?’ 하게 된 순간이 있었을까요?

사실 오류 같은 건 여러 번 크로스 체크를 하니까 대부분 다 걸러지는데요. 방송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있어요. ‘아, 내가 원고를 너무 많이 썼네. 그림으로도 충분했는데 너무 많이 썼네’라고요. <어린人권>에서도 PD랑 원고를 진짜 많이 읽어봤거든요. 아이 엄마가 울고 그러는 장면이 있어요. 그게 한 34초쯤 되거든요. 그냥 딱 한 문장이었으면 되는데 더 썼더라고요. 한마디로, 제가 주장하고 싶은 게 많은 거죠. 집에서 TV를 보면서 제가 딱 한 마디를 했어요. ‘저걸 내가 왜 썼지?’ 그랬더니 옆에 있던 신랑이 한마디 하더라고요. “아~무도 몰라.” 하지만, 저는 알죠. 원고가 길었다는 걸.

 


긴 시간, 긴 호흡으로 다큐멘터리를 써오고 있는 작가에게 묻고 싶었어요. 세상에 다큐멘터리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뭘까요?

요즘 들어 보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회적 약자, 우리 사회의 못난 곳, 그런 게 방송에 없어요. 안 나와요. 거의 투명인간처럼 사라지고 있거든요. 지금도 보면 사실 가출해서 밖에 나와 있는 애들이 있는데 아무도 안 다루죠. 가난한 집 아이여서 그런 게 아닐까요? 그래도 다큐멘터리에서는 다뤄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제가 한 프로그램을 보면 자살 유가족, 세월호 유가족, 고독사, 아동학대 피해자 이런 분들이 많으세요. 사실 안 보고 싶고 눈 감고 싶죠. 일단 방송을 볼 때 힘들잖아요. 주변에서 그런 말도 들어요. ‘네가 하는 프로그램은 매번 힘들어’라고요. 근데 저는 힘들어도 방송에서 이런 부분들이 계속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눈곱만큼이라도 그들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사회가 조금이나마 변할 수 있지 않겠어요? 제가 늘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는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다큐 프라임>을 할 때, ‘사회성을 내포한 사례자를 찾자’라는 말을 자주 하거든요. 그만큼 그분들의 인터뷰, 혹은 증언이 제일 힘이 세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인정하는 괜찮은 작가가 된다는 것. 다큐멘터리 작가라면 사례자들을 카메라 앞에 세우는 것이 그 시작이 아닐까. 작가는 어린 인권을 위해서 용기 낸 많은 사례자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결국은 사례자들이 엄청난 용기를 내준 덕에 제작이 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방송이 나간 후 받은 메일이 오래 기억될 것 같다고도 했다. ‘제 이야기를 들어주고 방송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는 어른이 된 아동학대 피해자가 보내온 인사였다.

 

 

[출처 : 한국방송작가협회 방송작가 웹진 8월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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