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원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 컬럼
- 2025. 4. 7.
[출처: 한국방송작가협회 방송작가 VOL.228 2025년 3월호]
디즈니+ <조명가게>를 연출한 배우 겸 감독 김희원
글. 박나경 편집위원 사진.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저는 이런 상상 많이 해요.” “그런 생각 진짜 많이 했어요.” “계속 곰곰이 생각해요.” “매일 생각했어요.”
강풀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조명가게>를 연출한 배우 겸 감독 김희원이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한 말이다. 36년간 배우로 이력을 쌓다가 <조명가게>로 처음 메가폰을 잡은 그는, 이 작품으로 디즈니+의 2024년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 중 최다 시청 기록을 세우며 믿을만한 감독으로 첫걸음을 뗐다. 누군가에게는 돌연한 변신으로 보이겠지만 ‘그럴 줄 알았다’는 게 주변의 반응이다.

어릴 때부터 알던 이정은 누나가 그러더라고요. 아니 어떻게 이렇게 생각한 걸 다 하냐고. 연극 하다가 제작하다가 영화 하다가 그다음에 이제 감독까지. 평상시에 얘기하던 대로, 은연중에 나온 말들이 이렇게 현실에서 자꾸 이루어지는 게 신기하다고요.
이 작품이 아니어도 언젠가 연출을 꼭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나름대로 책도 보고 연기를 할 때도 ‘아, 이건 이렇게 하면 더 재밌겠다.’ 이렇게 상상하면서 연기하고 그러다가 단편부터 시작해야겠다 마음먹고 본격적으로 준비를 했죠. 단편도 우연찮게 호러물이었는데 사실 호러라는 장르 자체보다 ‘소통’에 대해 얘기하려던 거였어요. 소통, 그러니까 대화를 하고 있어도 대화가 안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똑같은 단어, 똑같은 뉘앙스를 얘기했는데 서로 이해하는 게 완전히 다른. 그런 소통에 관한 얘기를 하려다 보니 그냥은 진부할 것 같아서 호러로 하면 재미있겠는데, 생각한 거였어요. 대본도 완성됐고 이렇게 이렇게 찍어야지 구체적인 계획을 다 짰는데 <조명가게> 제안이 들어왔어요.



배우 김희원에게 <조명가게>의 연출을 제안한 사람은 원작 웹툰의 작가이자 각본을 맡은 강풀이다. 김희원은 강풀 작가의 전작 <무빙>에서 정원고등학교의 최일환 선생님으로 분해 매력적인 연기를 펼쳤고, 작가와 배우의 관계로 만난 두 사람은 <조명가게>에서 작가와 감독으로 다시 한번 호흡을 맞췄다.
강풀 작가님은 정서를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세요. 슬프고, 알고 보니까 이랬어 하는 스토리에, 모든 것에 의미를 두려고 하시고요. 제안을 받고 처음엔 고민이 엄청 많았어요. 고민을 하다 보니 이 작품이 가지는 철학이 있잖아요. 그 철학이 와닿았고 ‘아! 그래 이렇게 가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겠다’라고 스스로 납득되는 순간이 있었어요. 만약에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내가 장례식장에 있는데 부모님이 옆에서 나한테 무슨 얘기를 계속하신다면··· 또 나도 부모님께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그럼 이 얘기를 한 번쯤 전달해 주고 싶은 마음이 너무 들 텐데··· 여기서 시작했어요. 이거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겠다, 이거 해야겠다 생각을 했죠. 사후 세계와 여기 세계, 이렇게 서로 안 보이고 보이고 하는 상황에 대해 작가님한테 얘기했더니 작가님도 동의하셔서 같이 만들어 가기 시작했어요.


왜 자신에게 연출을 맡겼는지는 따로 묻지 않았다. 사는 동안 마주친 순간순간들이 모두 ‘이상하게’ 운이 좋았던 것처럼 그는 이번에도 그저 감사한 마음을 가질 뿐이다.
김희원은 공부로 승부 걸 생각이 없었기에 학력고사를 끝까지 치르지 않았다. 도중에 시험장에서 나와 지하철을 탔고, 집어 든 신문에서 구인 광고를 봤고 광고 속 극단을 찾아가 배우가 됐다. 이전까지 한 편의 연극도 본 적 없었으나 처음부터 무대에 섰고, 재주를 알아보는 이들이 많아 다양한 무대를 경험했다. 6~7년 정도 지나 무대 위에서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경험을 한 뒤로는 연기의 맛과 재미도 조금 알게 됐다. 뒤늦게 대학에서 연극 연출을 공부한 뒤 무대로 돌아와 다시 연기를 시작했는데, 딱 한 가지 풀리지 않는 숙제는 여전했다.
연극배우도 직업이라고 해서 시작했는데 돈을 한 푼도 못 받을 때가 많았어요. 그런데도 누가 하자고 하면 하고, 공연 끝날 때쯤 수익이 없다고 하면 못 받고. 그만둬야지 하다가도 또 하자고 하면 하고 악순환이 계속됐죠. 그래서 외국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여기 남아 있으면 또 할 것 같아서. 무작정 호주에 갔어요. 거기서 서빙부터 막노동까지 몸 쓰는 일을 하며 돈을 벌었죠. 움직이면 돈이 벌리더라고요. 그런데 어느 날인가 페인트칠을 하다가 ‘내가 사는 게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인가’ 싶더라고요. ‘아, 평생 이러면 정말 재미없겠다. 나는 돈보다 연기를 하고 무대 위에 있는 걸 더 재미있어하는구나. 잘 몰랐는데 나는 연기를 되게 좋아했구나···’하고 깨달았죠. 그렇게 2년 반 정도 호주에 머물다 돌아왔어요. 다시 연기를 하다 보니 ‘아, 나는 그냥 이거 계속하다가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이름이 알려지면서 돈을 벌게 돼 조금 더 행복하긴 한데, 돌아보니 그전에도 행복했어요, 경제적으로는 너무 힘들었지만. 그땐 몰랐지만 행복했으니까 버틸 수 있었겠죠. 제가 종교는 없지만 신이 있다면 신이 저를 이쪽으로 계속 유도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어요.
다시는 연기를 하지 않으려고 국경까지 넘었지만, 오히려 연기에 대한 애정을 깨닫고 돌아온 김희원이 400번 넘게 본 공연이 있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창작 뮤지컬 <빨래>. 2005년 초연 이래 누적 관객 130만 명에 6,300회 이상 공연을 펼치며 대학로의 스테디셀러 뮤지컬로 자리 잡았고, 일본과 중국에서 라이선스 공연이 이어지며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김희원은 이 작품의 예술감독이자 엔젤투자자로 뮤지컬 <빨래>의 성장을 물심양면 도왔다.
처음부터 제작을 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당시 제가 하고 싶은 작품을 만나고 싶어서 대학 졸업 공연들을 많이 보러 다녔거든요. 이 작품은 한국예술종합대학 연극원 졸업 작품인데 보고 나니 ‘이거 너무 좋다!’는 느낌이 딱 왔어요. 그래서 작가 겸 연출인 추민주 학생을 찾아갔죠. 만나서 나중에 이거 대학로 무대에 올리면 나를 출연시켜 달라고 그랬더니 알았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기다려도 소식이 안 들리는 거예요. 알죠, 뭐 쉽게 되나요? 기다리다가 제가 먼저 전화를 해서 다시 만났어요. 한두 달에 한 번, 석 달에 한 번 그냥 커피를 마셨어요. 글이 너무 훌륭해서 친하게 지내고 싶었거든요. ‘언젠가는 하겠지··· 그럼 시켜주겠지···.’ 하면서 만났는데 돈이 없으니까 계속 제작을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래! 그럼 내가 해보자! 작품이 이렇게 좋은데.’ 결심하고 돈을 여기저기서 빌려 무대에 올렸어요. 좋게 말하면 열정인데 뭐든 해야겠다는 절박함이 좀 더 강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무대와 스크린, 연기와 연출, 열정과 절박 사이를 오가며 김희원이라는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켜 온 그는 각각의 콘텐츠들이 가진 매력을 잘 알기에 어느 한쪽에 치우침 없이 새로운 도전을 계속해 나갈 작정이다.
연극···, 영화···, 연출···. 모두 매력이 넘치죠. 정말 넘칩니다. 연극은 배우 자체가 연출이고 작품이 아닐까 생각하거든요. 연극 무대에서 연기를 하면 관객을 마주 보면서 피드백을 바로바로 받잖아요. 그리고 박수갈채, 이건 진짜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어요. 관객과 맺는 관계와 소통이라는 큰 매력이 연극엔 있고 영화는 어떤 사람의 인생에 한 커트가 영원히 남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연극이 전체적인 이미지가 남는다면 영화는 어떤 대사 하나, 커트 하나가 그 사람에게 영원히 남잖아요. 그게 10년, 20년, 진짜 30년도 가고요. 그런 데서 오는 그 짜릿함이 뭐 어마어마하죠. 그리고 연출의 매력은 저는 제일 좋았던 게 ‘아, 이걸 이렇게 볼 거야’ 기대한 부분을 시청자가 딱 그렇게 봐줄 때. 저는 이번 작품 찍으면서 많이 울었거든요. 그러면서 ‘아, 이거 진짜 다 울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그 장면에서 또 정말 다 우셨다고 하니까 기분이 되게 좋았어요. 많은 사람들하고 공감하는 느낌, 그게 또 아주 매력이 있더라고요. 앞으로도 연기가 됐든 연출이 됐든 또 어떤 장르가 됐든 딱 봐서 좋으면 그냥 할 거예요. 일단 신선했으면 좋겠어요. 소재든 내용이든 감정이든.

자신이 의도한 대로 시청자의 반응이 나올 때, 자신이 드러내고 싶던 부분을 시청자가 알아채 줄 때 창작자로서 더 큰 기쁨이 없더라는 김희원. 그런 면에서 김희원에게 가장 큰 기쁨을 안겨준 한 장면이 있다.
<조명가게> 4부 마지막에 병원을 원테이크로 찍은 거요. 그걸 잘 찍은 것 같아요. 대본에는 없는 장면인데요, 1, 2, 3부에서 헷갈리던 관계와 장면들을 어느 정도 설명하면서 ‘이 사람들 이야깁니다.’라고 정점을 찍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어요.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은 우리가 볼 때나 의식이 없지, 사실 의식이 없는 게 아니잖아요. 지금도 왔다 갔다 계속 움직이고 있는 거잖아요, 뇌 속에서는. 거기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나, 그걸 좀 더 구체화하자. 그래서 병원에 누워 있는 모습을 정말 역설적으로 해변에 편안하게 누워 있는 것처럼 그렇게 표현하고, 여기 간호사들이나 의사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살짝 농담도 하고 웃기도 하는 모습으로 대비되게 찍었어요. 보는 사람들이 ‘저기에서는 지금 어두운 골목길에서 비를 맞으며 저렇게 왔다 갔다 하는데 여기에서는 이렇게 편안하게···’, 이런 괴리를 느끼도록 과장해서 보여주는 게 결국 이 복잡한 정신세계 얘기를 한 번에 설명하는 거겠다 해서 만든 신이거든요. 그러려면 무조건 원테이크다. 왜냐하면 해변가에서 이렇게 편안하게 노는 걸 커트 커트로 잘라서 보여주면 그 정서가 끊어질 것 같았거든요. 그런 제 생각이 맞았고 많은 분이 또 그렇게 봐주셔서 되게 감사했어요.

매일 벽을 만나고, 매일 욕심을 버리고,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과 매일 대화를 나누며 완성해 놓고 보니 결국은 이 모두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작업’이란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는 김희원은 생에서 또 하나의 변곡점이 될지 모를 지금의 자신을 어떻게 돌아보게 될까.
저는 이런 상상을 많이 해요. 지금 제 앞에서 김희원이 오디션을 보는 거예요. 스물다섯 살의 김희원, 서른 살의 김희원, 마흔 살의 김희원이 오디션을 보면, 나는 언제쯤의 나를 합격시킬까? 그 생각 진짜 많이 했어요. 스물다섯에서 스물여섯은 자기 실력이 늘고 있는지 모를 것 같아요. 스물일곱에서 스물여덟도 자신이 성장하고 있는지 모를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제가 이 일을 36년을 하고 나니까 그때보다는 늘어 있는 것 같아요. 그 순간순간에는 당연히 몰랐죠. 제 나름대로 고민을 계속했기 때문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지고 깊이도 생긴 것 같은데 당시에는 모르죠. 제가 또 한 70살 되면 지금의 저를 보고 ‘얘가 아직 이렇게 젊었구나’ 그럴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저는 계속 변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과연 몇 살의 김희원을 합격시킬지는 지금도 모르겠어요. 분명한 건 ‘이제는 변했다. 계속 변하고 있었고 지금도 변하는 중일 거다’라고 믿는 거죠. 언젠가 분명히 한 번은 합격을 하긴 할 텐데 그게 몇 살이 될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셀프 오디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어두운 골목 끝에서 환하게 빛나는 ‘조명가게’가 떠오른다. 그 안을 채운 전구 하나하나는 모두 세상 사람들의 빛이다. 그 빛을 향해 걷는 한 남자가 있다. 걷는 길을 어둡게만 느끼고 매일 어제와 같은 오늘이 반복된다고 생각한 날도 있지만, 훗날 돌아보니 순간순간은 빛났고, 그때보다 훌쩍 자라 있는 자신을 마주할 수 있었다는 남자의 고백도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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