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Dec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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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의 숨결을 찾아 떠나는 문학기행 : 하동(河東)

<토지>의 숨결을 찾아 떠나는 문학기행 : 하동(河東)

하동(河東)은 국토 하단부를 서에서 동으로 가르는 섬진강 하류에 자리해 붙여진 이름이다.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로 손꼽히는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곳이다. 박경리 작가는 동양화를 닮은 수려한 섬진강과 역사적 무게를 지닌 지리산, 넓은 들판을 품은 하동 평사리를 작품의 배경으로 낙점했다고 알려져 있다. 새해 첫 달, 문학과 자연, 차의 풍요로움을 간직한 하동으로 떠나보자.

 

축축이 젖은 모래는 여인네 살갗처럼 부드러웠다. 섬진강의 모래는 순백색이며 가루같이 부드러웠다. 그래, 글기둥 하나 붙들고 여까지 왔네.

 


문학의 숨결과 생명력을 품은 대지

경남 하동은 천혜의 절경을 품은 까닭에 문학작품 배경으로도 자주 등장한다. 하동을 그린 대표적인 작품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박경리 작가의 <토지>가 아니겠는가. 한반도, 일본, 간도를 아우르는 소설의 무대 중 출발점이 된 곳이 바로 하동의 악양면 평사리다. 1973년에 발표한 <토지>는 대지주 최 씨 가문 4대에 걸친 비극적 사건을 다뤘다. 구한말 동학농민운동에서부터 8.15 광복까지 민초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통해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풀어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소설 속에는 “축축이 젖은 모래는 여인네 살갗처럼 부드러웠다. 섬진강의 모래는 순백색이며 가루같이 부드러웠다.”, “섬진강과 해란강이 왜 다를까 하고 생각한다. 아름답기론 섬진강편이다.” 등 하동의 풍경을 묘사한 대목이 종종 등장한다. 듬직한 지리산과 수려한 섬진강은 서사를 품으며 이내 독자들을 평사리까지 안내한다. 작품의 숨결과 생명력을 고스란히 간직한 마을 곳곳을 거닐자면 문학의 향기를 만끽할 수 있다.

 

시공간을 뛰어넘은 문학혼을 마주하다

평사리 일대에는 최참판댁을 거쳐 박경리문학관에 이르기까지 이야기길이 펼쳐진다. 2016년에 개관한 박경리문학관에 들어서자 특유의 한식목구조가 안온하고 포근한 느낌을 선사한다. ‘그래, 글기둥 하나 붙들고 여까지 왔네.’ 입구에서 맞닥뜨린 글귀에서 박경리 작가의 삶과 치열한 글쓰기가 어렴풋이 가늠된다. 작가는 사는 게 고통스러워서 글을 썼다고 했다. 가족과의 이별, 팍팍한 삶을 창작활동을 통해 풀어갔다. 이곳에서는 매일 일기처럼 글을 써 내려가며 희망을 잃지 않았던 작가의 삶을 회고할 수 있다. <토지>는 장장 25년에 걸친 유장하고 긴 호흡으로 완성했다. 문학관 내부에는 그 시간을 오롯이 담은 유품들이 비치되어 있다. 육필 원고를 비롯해 안경, 만년필, 돋보기부터 손때 묻은 재봉틀, 사진 앨범, 옷 등까지 작가의 생애와 작품을 심도 깊게 이해할 수 있는 물건들이 자리한다.

이곳의 또 다른 즐거움은 작품 세계에 한층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것. 최치수, 최서희, 길상이, 월선이 등 등장인물의 관계도를 비롯해 배경 무대의 역사적·공간적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자료 등을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높은 지대에 위치한 덕분에 문학관 앞마당에서는 평사리 벌판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마당을 가로지르는 조붓한 물길이 들려주는 청량한 물소리가 위안처럼 다가온다.

 

매암차문화박물관

하동은 문학의 고장인 동시에 차의 고장이다. 최참판댁에서 차량으로 5분 남짓 이동하면 매암차문화박물관을 만난다. 박물관 마루에 걸터앉아 사시사철 푸른 녹차밭을 감상하며 차를 음미하면 망중한을 즐길 수 있다.

주소 경남 하동군 악양면 악양서로 346-1(매주 월요일 휴무)

 

소설의 향기가 오롯이 묻어난 최참판댁

문학관에서 나와〈토지〉의 배경을 재현한 작은 마을, 최참판댁으로 향한다. 주인공 최치수와 최서희 일가, 그리고 주변 인물들의 생활공간을 실현해놓은 곳이다. 단순히 작품의 배경을 농토로 완성한 것에서 나아가 사람살이의 생명력을 품은 터전으로 다가온다. 별당과 안채, 사랑채, 문간채, 행랑채 등 10개의 건물로 이루어진 구조는 조선 양반가의 전형적인 가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초가지붕과 낮은 사립문, 아기자기한 골목 또한 정겨운 감정을 자아낸다. 구석구석을 따라 걷다 보면 소설 속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지는 생생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윤 씨 부인이 앉아 인자한 웃음을 띠며 앉아 있을 것 같은 안채 마루, 별당아씨와 어린 딸 서희가 거처했던 별당채, 금방이라도 길상과 마주칠 것 같은 담벼락 등이 자리한다. 그중 가장 아름다운 백미는 별당채의 대청마루와 연못이다. 한겨울을 잊게 하는 상록수가 반영된 잔잔한 물이 고즈넉한 풍경을 완성한다. 사랑채 평상에서 멀리 내다보는 유순한 산세는 평온함을 선사한다. 모든 생명을 거둬들이는 지리산의 포용력 덕분에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는 박경리 작가의 회고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순간이다.

어 가자. 간장 녹을 일이 어디 한두 가지가. 산보듯 강보듯, 가자!
- <토지> 6권 중

 

박경리문학관

주소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길 79
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6시
문의 055. 882. 2675

 

 

[출처 : 사학연금 웹진 1월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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