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읽는 시간 : 트래블 버블 협정, 항공산업 재도약할까?
- 경제
- 2021. 6. 22.
지난 3월 국토교통부가 ‘트래블 버블(Travel bubble)’ 협정 체결을 추진한다는 발표는 코로나19 이후 끝없는 침체에 빠졌던 항공·여행업계에 실로 오랜만에 찾아온 낭보였다. 트래블 버블(Travel bubble)은 코로나19 방역에 성공해 안전이 검증된 나라들 사이 자유로운 여행과 방문을 허용하는 것이다. 거품이 안과 밖을 구분하듯, 트래블 버블 협정을 맺은 국가들끼리는 자유롭게 이동하지만 외부 위험 요소는 차단한다는 개념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글. 성수영(한국경제신문 기자)
한국의 코로나19 확산세가 잡히지 않으면서 트래블 버블 협정 체결은 예상보다 지연되고 있다. 하지만 물밑 준비는 여전히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국제 관광시장 회복을 준비하기 위한 특별전담반(TF)을 구성하고 인천국제공항에서 첫 회의를 열었고, 국토교통부는 일부 국가와 실무 차원에서 협정 체결 논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트래블 버블의 효과와 다른 국가들의 현황 비교 및 전망을 정리했다.
‘방역 선진국’, 트래블 버블 본격 시동...업계 화색
기나긴 ‘코로나19 암흑기’도 백신의 등장으로 점차 그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방역 우수국들은 본격적인 해외여행 자유화에 앞서 트래블 버블 도입을 앞다퉈 추진 중이다.트래블 버블의 기본은 신뢰다. 상대국의 여행객을 자유롭게 받아도 방역에 지장이 없다는 확신이 있어야만 시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백신 접종률이 높거나 신규 확진자가 거의 나오지 않아야 체결할 수 있다. 백신 접종률이 1.5%도 안 되지만 하루 신규 확진자가 한 자릿수인 뉴질랜드, 지난해 11월부터 10명대의 확진자를 유지하는 호주가 지난달 4월 도입하며 선두권에 선 이유다. 같은 달 대만도 아시아권에서는 처음으로 팔라우와 협정을 체결했다.
관련 업계는 트래블 버블 도입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지난 9월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트래블버블 체결 후 해외여행 의향이 있냐는 질문에 내국인 52.8%, 외국인 72.2%의 응답자가 해외여행을 하겠다고 답했다. 자유로운 여행은 시기상조지만 협정이 체결되면 관련 업계의 실적은 바로 급반등할 것으로 보인다. 억눌렸던 해외여행 욕구가 협정 체결국에 여행을 가는 식으로 폭발할 가능성이 높아서다.앞서 북유럽 ‘발트해 3국’인 리투아니아와 에스토니아, 라트비아는 이미 지난해 7월 트래블 버블을 세계 최초로 도입했다. 총 인구가 400만~600만명에 그치는 이 국가들은 당시 확진자가 한 자릿수가 되자 ‘발틱 트래블 버블’을 체결했다. 예를 들어 에스토니아 시민이 라트비아나 리투아니아에 방문할 때 2주간 자가격리가 면제된다. 덕분에 발트해 3국 여행 및 관광업계는 다른 나라에 비해 양호한 실적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트래블 버블은 영국, 이스라엘 등 백신 접종 속도가 빠른 국가들을 중심으로 계속 확산될 전망이다.
‘백신 여권’ 도입도 검토....한국은 언제쯤?
트래블 버블에서 더 나아간 개념이 ‘트래블 패스’다. 이른바 ‘백신 여권’이다. 싱가포르는 5월부터 휴대폰 앱 형태의 백신 여권을 도입할 계획이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를 통해 발급한다. 디지털 증명서를 실행하면 화면에 코로나19 감염 및 백신 접종 여부가 한 번에 표시되는 식이다. 백신을 맞은 싱가포르 입국자들은 백신 여권만 보여주면 코로나19 이전처럼 탑승 수속과 공항 입국 때 별다른 검사 및 격리 절차를 밟지 않아도 된다. 싱가포르가 트래블 패스 도입에 성공하면 백신 여권을 도입하는 국가는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항공사들도 함께 분주해졌다. 싱가포르항공 외에도 에미레이트 항공과 말레이시아항공 등 항공사 20여곳이 트래블 패스 도입을 위한 테스트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민영항공사 ANA(전일본공수)도 제도 도입을 검토 중이다. 방역·백신 접종 선진국에선 해외여행이나 출장을 위한 비행기표 예약이 증가세를 보이고 있고, 크루즈 여행 등을 미리 계획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한국의 일부 발빠른 여행사들도 한발 앞서 트래블 버블 논의가 오가고 있는 대만과 괌을 목적지로 한 전세기 여행 상품을 개설하고 있다. 한 여행사 관계자는 “트래블 버블 가능성이 있는 상품을 마련 중”이라며 “트래블 버블이 시행되지 않으면 100% 환불이 가능한 상품”이라고 설명했다.다만 당분간 한국의 트래블 버블 협정 체결은 요원해 보인다. 수급 문제로 백신 접종이 지연되고 있고, 코로나19 확진자 수 역시 줄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통연구원(KOTI)도 최근 연구에서 항공수요가 지난해 수준으로 회복되는 시점을 빨라야 오는 2022년 4월로 전망했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아시아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지난해 11월 트래블 버블을 추진했으나 시행 직전 확진자가 급증해 취소한 적이 있다.
방역 안전성·형평성 우려도 적잖아
트래블 버블에 대해 호의적인 시각만 있는 것은 아니다. 먼저 방역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기존 백신이 통하지 않거나 전염성이 더욱 강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등장을 우려하고 있다. 비록 ‘방역 선진국’에서만 관광객을 가려 받더라도 변종 바이러스 등장 등을 통해 대유행이 벌어질 가능성은 존재한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인명 피해 및 경제적 타격은 트래블 버블을 시행하기 전보다 훨씬 커진다.
형평성 문제도 있다. 백신 접종 성과가 나라마다 극명하게 갈리고 있어 접종률이 저조한 나라들의 국민들은 차별을 당하거나 상대적 박탈감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소수 인종이나 임산부, 또는 백신 접종 후순위인 젊은층, 디지털 기계에 익숙지 않은 노인층이 불이익을 볼 수도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백신을 접종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불공평하고 부당함과 불공정을 더 각인하는 것”이라며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한 이유다. 해외 입출국 때 민감한 의료정보를 공개해야 하는 데 대해서도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미국 폴리티코는 최근 ‘백신 여권은 황금 티켓인가, 아니면 (아직 밤인데도 동이 트는 것처럼 보이는) 거짓 새벽인가’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백신 여권은 우리에게 정상적인 삶을 돌려주는 황금 티켓일 수도 있지만, 방역 지침 준수 등 우리의 책임에 면죄부를 줘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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