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 간 한국광복군
- 컬럼
- 2021. 8. 4.
인도에 간 한국광복군
인도 델리 레드 포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주인도 영국군 총사령부(이하 영국군) 주둔지로 사용되던 곳이다. 우리에겐 한국광복군 ‘인면전구 공작대(印緬戰區工作隊)’ 활동지로 의미가 크다. 인면(印緬)은 인도와 버마를 뜻하고 전구(戰區)는 전투지역을 말한다. 이를 이어 붙이면 인도 버마 전투지역에 파견된 공작대가 된다. 인도에 간 광복군, 좀 생소한 이야기지 않나. 그들은 누구였고 어떻게 인도까지 가게 된 걸까.
글|사진. 김동우 다큐멘터리 사진가
최정예 병력 선발
1942년 가을, 영국군은 김원봉이 이끄는 민족혁명당과 접촉한다. 공작원파견이 논의된다. 이에 최성오, 주세민 등 두 명의 대원이 먼저 인도, 버마 전선에 파견된다. 아마도 그들의 성과가 나쁘지 않았던 모양이다. 한 달 남짓한 그들의 짧은 활동 기간에도 불구하고 영국군은 더 많은 인원을 요청해온다. 이에 김원봉과 콜린 맥켄지 영국군사령관은 1943년 5월 ‘민족군선전연락대파견에 관한 협정’을 체결한다. 이 협정에 따라 민족혁명당과 영국군은 일본군 포로를 신문하고, 대적(對敵) 선무방송(심리전의 한 형태로 보통 군사작전을 지원할 목적으로 작전 전후 실시하는 선전방송을 일컫는다)으로 적군을 회유하는 등의 특수전을 펼쳐나가기로 한다. 요즘으로 치면 심리전단 활동에 관한 내용이었다. 한인 병력들은 일본인과 겉모습이 비슷할 뿐만 아니라 일본어에 능했다. 무엇보다 정신적으로도 잘 무장돼 있었다. 일본군과 치열하게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영국군에겐 없어선 안 될 병력이었다. 협정 체결 이후 실제 공작대 파견은 한국광복군 총사령부를 통해 이뤄진다. 이때쯤 김원봉이 이끄는 조선의용대가 광복군 제1지대로 편입됐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광복군을 지휘 통솔하던 중국군사 위원회 또한 이 문제를 임시정부 내에서 처리해주길 원했다. 광복군 총사령부는 곧바로 공작대 선발에 나선다. 신체조건은 물론이고 일본어와 영어 등 어학능력이 뛰어난 최정예 대원이어야만 했다. 그렇게 공작대 대장에 한지성, 부대장에 문응국이 임명되고 김상준, 김성호, 나동규 등 총 9명이 1943년 8월 중국 충칭을 떠나 인도로 향한다. 그들은 델리 레드 포트와 콜카타등에서 1943년 연말까지 3개월간 선무방송, 전단작성, 문서번역, 암호 해독 등을 체계적으로 훈련받는다.
2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으로
훈련을 마친 인면전구공작대는 인도 동쪽 끝 임팔(Impal) 전선에 투입돼 버마 탈환 작전 등에 참여한다. 임팔은 남쪽으로 방글라데시, 동쪽으로 버마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마니푸르(Manipur) 주의 주도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 제4군단 사령부가 있던 곳이다. 특히 1944년 3월부터 7월까지 영국군과 일본군 사이에서 밀고 밀리는 치열했던 ‘임팔대회전’의 최전선이기도 했다. 당시 공작 대원 중 일부는 영국군 제17사단을 따라 버마 티딤(Teddim) 지역까지 진격해 들어간다. 그러자 일본군 33사단이 거세게 포위 공격을 퍼붓는다. 일본군은 이 전투에서 2개 연대를 동원했는데 그중 한 개 연대는 영국군의 배후를 차단하고, 다른 한 개 연대는 측면을 공격하는 고립 작전을 구사한다. 영국군은 예상치 못한 공격에 당황하며 악전고투하게 된다. 이때 인면전구공작대 문응국 부대장이 혜성처럼 등장한다. 그는 노획한 일본군작전문서 등을 세밀히 판독하고, 포로심문 등을 통해 일본군 병력 배치 상황을 정확하게 간파한다. 문 부대장의 분석대로라면 일본군 포위 병력은 예상보다 적어야 맞았다. 정보 분석 결과가 사단장에게 즉각 보고된다. 곧바로 철수 방향이 하달된다. 17사단은 조심스럽게 포위망을 뚫고 티딤에서 임팔까지 180km를 퇴각해 4월 2일 전원 무사 귀환한다. 이 직후 영국군사단장이 직접 문 부대장을 찾아 노고를 치하한다.
전장에서 찾은 명분
왜 임시정부는 그 먼 인도까지 광복군을 보냈던 걸까. 이유는 2차 세계대전 참전국 지위에 있다. 연합군 편에서 전쟁에 참여하고 이를 인정받는 건, 전후 강대국들에게 자주독립을 강력하게 요구할 수 있는 카드였다. 인면전구공작대는 참전국 지위의 강력한 명분이었다. 임시정부는 혼란스러운 국제 정세 속에서 독립에 필요한 일이면 무엇이든 하려고 했다. 인면전구공작대는 이런 노력의 산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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